<163> 경남 산청 금서 화계리 구형왕릉.... by 도시애들


 

경남 산청군 금서면 구형왕릉....



허준의 업적을 기리고 또 그의 뜻이 그러했듯이 많은 사람들의 건강을 생각하는 그의 생각대로 지리산 높은 곳에 관광단지를 조성하는 그 또한 좋은 일이지만 혹시나 근처의 생태가 많이 파괴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고개를 내려와 구형왕릉의 입구인 덕양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덕양전을 돌아보았다. 우리 집안은 김해 김씨京派 - 牧卿派 이며 시조대왕 이후 아버님께서 73世 이시고 본인이 74世 이다.

우리의 선조인 가락국의 마지막 왕인 양왕께서 신라에 나라를 빼앗기고 이곳으로 피신을 와 궁을 세우고 살아가시다가 5년후에 돌아가셨다고 어디 선가 들었다. 아마 당숙께서 말씀해주신 것으로 생각된다. 경상도 쪽 지리산 자락에 계신다고... 오늘에야 오게 된 나로서 너무도 무뢰스럽고 또 여짓껏 여행이라 돌아다닌 것이 모두 헛것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제를 모시러도 오는데 나는 여행지로 라도 한번도 못왔다는게 죄스럽기까지 하다.

이곳 덕양전(德讓殿) 경내에는 홍살문, 영정각, 안향각, 정숙당, 추모재 등의 건축물과 연못이 있고 해마다 봄에 춘향제(음력 3월 16일) 그리고 가을에 추향제(음력 9월 16일)가 제향(祭享)이 올려지는데 이제 이것을 알았으니 내년부터는 봄, 가을 꼭 참석할 것을 다짐해 본다. 덕양전 정문은 잠기어 있고 옆 해산루 밑의 문은 개방이 되어있어 이곳으로 들어가 내부를 구경할 수가 있었다.

[덕양전 해산루...]

[덕양전 정문과 홍살문...]

덕양전은 양왕과 계화 왕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원래 수정궁으로 왕릉 가까이 있었는데 고종 15년 덕양전으로 개칭하고 1928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그 유래는 서기 532년 신라 법흥왕 19년(가락기원491년)나라를 신라에 선양하고 이곳 왕산 수정궁으로 이어하여 5년후 돌아가셨다. 그 후 향화를 계속하다가 전화로 중단되었다가 서기1798년 심릉후 능하에, 능침을 짓고 다시 향례를 올렸다. 서기 1989년 숭선전(김해수로왕 능침)이 사액됨과 동시에 덕양전으로 개칭하여 서기 1930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되어 1991년 문화재 정화사업에 의하여 중건되었다.

가락국 제10代왕 양왕(위 仇衡)과 왕비(위 桂花) 양위의 위패를 모시고 춘추향례와 삭망향화를 드리는 덕양전(德讓殿) 이다. 그 유래는 서기 532년 신라 법흥왕19년(가락기원491년) 나라를 신라에 선양하고 이곳 왕산 수정궁으로 이어하여 5년후 돌아가셨다 그후 향화를 계속하다 전화로 중단되었으며 서기 1798년 심릉후 능하에 능침을 짓고 다시 향례를 올렸다. 서기 1898년 숭선전(김해수로왕 능침)이 사액됨과 동시에 덕양전으로 개칭하여 서기1930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되어 1991년 문화재 정화사업에 의하여 중건되었다고 전한다.

[비각...]

[왕산?(王山)...]

[관리사무소, 숙소로 보이는...]

[뒤 쪽엔 메주가 한창...]

[덕양전 현판이...]

[뒷마당에서 본 해산루...]

[왕산각 뒤쪽에는...]

[영정이 모셔진 사당으로 보이는데...]

[...]

[덕양전 안의 비각...]

[망경루라고 쓰여진 망루가 개울가에 멋지게...]

덕양전을 뒤로 하고 좁은 길로 오르면 우측으로 망경루가 개울 속으로 반은 몸을 감추고 넓직한 쉼터를 안겨준다. 시간관계상 사진만 담고 위로 올랐다. 또 우측으로 왕산사라는 사찰이 자리하고 조금더 위로 오르니 등산로와 갈라지면 약수터 가는 길을 알리는 팻말과 뒤로는 작은 공간이 있고 왕산 등산로와 류의태 약수터를 알리는 안내판이 반긴다.

[허준의 선생님이 한약을 이물로 다렸다는데...]

류의태 약수터에 얽힌 전설이나 설화로는 류의태 자신이 고치지 못하는 불치의 난치병을 "천인수"(千蚓水,萬蚓水라고도 함)를 먹어 고쳤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으며, 신의 류의태의 가르침 속에 무릇 물에는 서른세가지 종류가 있고 그 약효가 달라 의원은 약효를 내는데 물을 가려써야 한다며 물 중에 정화수(井華水)에 이어 두 번째로 치는 여름에 차고 겨울에 따뜻한 "한천수(寒天水)"로 감히 장복하면 반위(反胃:胃癌)를 다스린다는 물로 왕산의 약수가 이에 해당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겨울에도 왕산의 약수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맛이 참으로 좋은 것을 느낄 수 있다. 류의태 선행 활동시 한약제조에 사용되었던 샘터 (일명:약물통)의 약수는 돌너덜이 아래 자리잡은 서출 동류수(西出東流水)로 위장병과 피부병 등 불치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즐겨 애용하는 곳이다. 류의태 선생은 경남 산청군 신안면 하정리 상정 (옛지명:産陰縣 丁台)마을에서 출생하여 당대 제일의 하늘이 내린 신의(神醫)로 칭송 받았다.

동의보감을 편술하여 의성으로 칭송받은 허준의 의학적 재질과 지식을 키워준 스승이며, 특히 의술의 발전을 취해 허준에게 자신의 몸을 해부용으로 제공하여 해부학의 효시를 이룬 살신 성인의 위대한 의학자로 전해진다. 註 : "千年 頭骨에 千蚓水" 는 천년묵은 사람의 해골에 담긴 천년된 물을 이르며, 만년된 물을 萬蚓水라 함. 이렇게 알림판에 서술해놓고 있어 늦었지만 올라가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들어선다.

[하천을 건너는 첫 번째 다리...]

[두 번째 다리를 건너면 멀리 구형왕릉이 보인다....]

[입구에 들어서면 홍살문과 입구 그리고 우측에 구형왕릉이...]

[구형왕릉 입구 하천을 건너야...]

[입구로 들어와 재로 들어가는 다리...]

[구형왕릉 입구인 솟을대문...]

경남 산청군 금서면(今西面) 화계리(花溪里)에 있는 가락국(駕洛國) 제10대 구형왕의 돌무덤[石塚]은 사적 제21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층단(層段)을 이루는 방형(方形)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경사면에 축조되어 있다는 정도를 알고 입구에 도달하니 구형왕릉을 안내하는 표지판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전구형왕릉(傳仇衡王陵)- 사적 제 214호, 경상남도 산청군 화계리 소재.

가락국(駕洛國, 金官伽耶) 10대 구형왕릉(仇衡王陵)으로 전해지는 특이한 석조물(石造物)이다. 동쪽으로 내려오는 경사면에 피라밋 모양으로 자연석을 쌓아 올렸다. 위로 올라 갈수록 면적을 줄여가며 모나게 일곱 단을 쌓아 올렸는데, 전체 높이는 7.15m이다. 각 단 앞부분의 양쪽에는 모서리가 분명하지만, 뒤쪽은 경사면에 붙여 돌을 쌓아 모서리가 없다. 네 번째 단에는 가로 40cm, 세로 40cm, 깊이 68cm의 감실(龕室)과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다. 감실은 신주(神主)를 모시거나 등잔을 두기 위해 만들어지지만, 여기에서의 용도는 알 수 없다. 앞에는 가락국양왕릉(駕洛國 讓王陵) 이라 새긴 비석이 있고 돌담으로 주위를 둘렀다.

문부인석(文武人石), 돌짐승(石獸),상석(床石), 장명등(長明燈) 등도 배치되어 있으나, 근래에 만들어진 것이다. 전구형왕릉(傳仇衡王陵)이라는 명칭은 확증은 없고 그렇게 전해진다는 뜻으로 부쳐졌다. 발굴조사는 아니지만, 신라 대학교 박물관의 조사에 따르면 왕릉과 같은 고분일 가능성은 아주 적을 것이라 한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에는 아래쪽에 있는 암자 부근에 왕산사(王山寺)가 있었다고 기록되었고, 지역의 전승에서는 약 200년 전에 왕산사에서 활, 칼 등과 함께 왕릉에 대한 기록도 나왔다고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구형왕릉 전체의 모양...]

[왕릉 우측면 앞에 문인과 무인의 석상이...]

[왕릉 좌측편 앞에 무인과 문인의 석상이...]

[가락국양왕릉(駕洛國讓王陵) 이라 쓰인 비석과 왕릉...]

[구형왕릉 좌측위쪽에서 내려다본...]

[구형왕릉 옆부 분과 입구 솟을대문....]

[구형왕릉 윗부분은 타원형으로 되어있다...]

[제주들이 숙박을 할 수 있는 곳같고 뒤편엔 화장실이...]

[구형왕릉입구 다리 왼족으로 왕산 오르는 등산로가 보이고...]

[구형왕릉 홍살문 우측의 사자상...]

[구형왕릉 홍살문 좌측의 사자상...]

[구형왕릉 입구 쪽으로 들어와 재로 들어가는 하천을 건너는 다리...]

올라가면서도 보았지만 내려오면서 왕산사라 쓰여진 사찰이 있어 잠시 들러 보았으나 많은 돌 속의 평지무덤들일뿐 자세한 것은 알 수가 없었는데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왕산사지- 경상남도 기념물 제164호(‘97. 1. 30 지정) 금서면 화계리 산1번지 일원 전 구형왕능의 윗쪽 산 속에 있으며 약 200여년전에 마을사람들이 산에 올라가서 기우제를 지내고 내려오는 길에 비를 만나 왕산사에 들러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왕산사에는 언제인가 부터 법당 들보 위에 커다란 나무궤가 하나 얹혀 있었는데 누구도 그 내력을 아는 사람이 없었고 그냥 손댈 수 없는 것으로만 전하여 지고 있었다. 그런데 비를 피하는 일행 중에 민경언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평소에 담력이 센 분으로서 주지스님과 일행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궤를 내려서 열어보기에 이르렀다. 그랬더니 그 속에는 구형왕과 왕비의 영정과 옷 그리고 활과 칼같은 유물이 나왔고, 또한 명승 탄영의 왕산사 기등이 나와서 이를 고증하여 왕릉을 다시 찾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왕산사지는 수정궁(가락국시조대왕 별궁지)과 같은 부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 알려주고 있다. 너무 늦은 시간에 올라가 거의 해가 떨어지려는 때 찍은 것이라 선명도가 떨어지고 색이 전체적으로 푸른색을 띈다. 내년봄 음력 3월 16일 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 다시 올 것을 기약하며 내려와 남원길로 향한다. 이것으로 3박 4일의 여행일정은 끝이 나고 내일 성산이 위봉사와 송광사를 보고싶 다해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옥정호와 송광사, 그리고 위봉사를 들러 서울로 올라갈 것이다. 창원의 솔이네와 곡성의 성산, 너무 고맙게 살펴주어 이번 여행도 편하고 즐겁게 끝이 났다. -<끝>-



덧글

  • 솔이네 2004/11/30 22:14 #

    구형왕릉 누구의 무덤인가요?
    특이한 돌무덤이네요.
    지금 글올리고 계신가봐요
    좋은하루 되셨나요? 낼두 좋은하루 되세요
  • 도시애들 2004/12/01 00:09 #

    그려 이제 완성해서 올려놓았지..ㅎㅎㅎ
    우리 김해김씨 가락국 마지막왕 릉이지..
    걸 모르고 두번이나 지나치고...참나원...
  • Happy4U 2004/11/30 22:56 #

    구형왕릉은 가야의 마지막 왕의 릉입니다... 신라로 귀순했죠...^^
  • 도시애들 2004/12/01 00:10 #

    대신에 김유신장군이..ㅎㅎㅎ
    참 그리고 신라의 김씨 왕이 경주에..ㅎㅎㅎ
  • dwban22 2004/11/30 23:18 #

    사진은 직접 찍으신건가요? 사진이 너무 밝아요
  • 도시애들 2004/12/01 00:11 #

    해질무렵에 산속에서 찍은 사진이라 아무것도 안보여
    겨우 브라이트 주어 살리다 보니..ㅎㅎㅎㅎ
    죄송합니다. 내년봄엔 꽃과함께...
  • Cypher 2004/12/02 09:16 #

    잘 보았습니다. 나중에 블로그에 있는 내용만 모아서 여행집을 내셔도 좋겠는걸요. ^^
  • 도시애들 2004/12/02 22:24 #

    이런..과찬의 말씀을...
    제것은 그림책은 되어도 여행기는..ㅎㅎ
    그저 발길닿는데로 튀어다닌 그림책...
  • 산정(山亭) 2004/12/02 12:53 #

    구형왕릉의 존재도 몰랐는데 덕분에 배우고 갑니다..^^
  • 도시애들 2004/12/02 22:26 #

    저는 산청에 있는줄은 알았는데..금서면쪽인지는
    꿈에도...그래서 몇번 그냥 지나쳐 갔답니다.
    이번에 위치를 화계리라 알고 지도를 보니...
  • 하나강산 2004/12/02 12:54 #

    형태가 특이한 왕릉이네요...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게 고구려와 백제 초기 고분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요..
    릉을 지키는 사자상의 모습이 매섭게 느껴지네요...
    잘보고 갑니다.
  • 도시애들 2004/12/02 22:34 #

    안타깝게도 전해내려오기만 하지
    서적으로 ... 왜 역사이건 요즘이건
    증거가 되는것은 ....
    석릉 외에 다른조형물들은 요즘만들었다
    합니다. 물론 사자상도....
  • 碧泉 2004/12/02 14:04 #

    경주나 서울 근교의 왕릉을 보다가 구형왕릉을 보니 특이하네요.
    완전히 돌무덤입니다.
    객사의 섬돌위에 하얀 고무신이 놓여 있고...
    소낙비라도 내린다면 엄청 멋진 풍경이 그려질 것 같네요.
  • 도시애들 2004/12/02 22:36 #

    아마도 신라에 나라를 빼앗기고 근신하여
    이곳으로 오셨다는데...자연을 아시는분인것 같아요.
    이곳과 함양은 돌천지거든요..
    땅을 1톤 파면 700키로는 돌 300키로는 흙...
    내죽걸랑 이곳에 돌로....아마..ㅎㅎㅎ
  • 침묵하는 룩 2006/08/19 01:22 #

    사진과 설명이 잘되있어서 보는 재미가 두배네요^^ 돌로된 왕릉과 홍살문이 참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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