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_전북 고창군 아산면 도솔암 by 도시애들


일주문을 통과해 다리를 건너 개울 왼쪽길로 들어섰다. 선운사 쪽으로 오르는 길도 있지만 왼지 햇살이 나오는 것이 이쪽길을 택하게 해준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물통 하나라도 지니고 다녀야 하는데 우리는 그생각을 거의 잊고 여행을 한다. 그리고 또 목말라 하며 애태우기도 한다. 아니 어제도 당장 당하였었다. 직소폭포까지 상당한 시간을 소요하는데 이곳엔 약수도 없거니와 흐르는 계곡물도 없어 한모금도 못마신 채 주차장까지 내려와야 했었다. 그런데 오늘도 또 빈손으로 도솔암으로 향하고 있다. 다행이도 이곳은 매점도 있고 또 도솔암엔 약수도 있을 것이니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가금 차량들이 지나다녀 먼지를 피우고 가서 짜증은 나지만 이렇게 한적하고 또 힘도 안드는 즐거운 산행은 아마도 없을 것 같다. 도솔암 다녀온 사람들이 조금은 힘들다 해서 어떤 길일까 생각을 했는데 평지도 이렇게 유연한 평지인데 무슨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하고 반신 반의하며 천천히 오르는 길목에 파아란 녹차밭이 보인다. 볼 것도 없이 뛰어내려갔다. 개울가에서 올려다보는 녹차밭이 더욱 운치가 있어 보인다. 마침 햇살마저 찬조출연을 해주어 정말 파아란 녹차밭을 볼 수 있었다. 다만 하늘이 파랗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도솔암 오르는 초입에 녹차밭이...]

[도솔암 오르는 길목 차밭에 옛 찻집으로 보이는 돌집이...]

녹차밭을 지나 개울길로 올라가려 했으나 길이 좋지를 않아 차도로 나오려는데 멋진 돌집을 하나 만나게 된다. 지금은 인적이 없는 것으로 봐서 폐가인 모양인데 아마도 형태로 봐서 녹차를 즐기던 찻집으로 여겨진다. 얼마나 그림같은 모양새인가?... 창넘어론 햇살 가득한 녹차밭이 눈부시게 펼쳐 저 있고 나무 그늘밑에 시원하게 자리잡은 녹차방의 계단을 내려다보며 베란다? 에 기대어 서서 서로 눈을 마주보고 있노라면 절로 시인이라도 될 것같은 그런 분위기가 금방 떠오른다. 정신을 차리고 도로로 나가 다시 도솔암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해본다.

[도솔암 오르는 길목 공원 안의 개미취...]

[금창초(금난초)...]

[창포 씨방...]

[다른 나무 둘이서 같은 몸이된....연리지(連理枝)...]

이길을 오르다보면 너무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어제 변산 직소폭포 가는 길도 경사도가 작고 또 오르는 길이 숲속에 자리해 햇살을 피할 수가 있고 시원한 가운데 양쪽의 야생화나 풀을 보며 또 찾으며 걸어가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또 힘든 줄도 모르고 오를 수가 있는 것이다. 또 이곳의 매점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재충전하여 조금 올라서니 예쁘게 조성해놓은 야생화 공원이 있는데 이곳에서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그시간이야 말로 여행의 제일 즐거운 시간이 아니겠는가? 자연을 만끽하는 순간들.... 그맛에 사람들이 산을 좋아하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오르는 도중에 아주 귀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연리지(連理枝)인 것이다. 연리지라 함은 서로 뿌리가 다른 두 식물이 가지가 달라붙어 한가지가 된 것을 의미하는데 이 나무야 말로 완전한 연리지인 것이다. 근간 신문이나 매스컴에 연리지, 또는 연리목에 관해 떠드는 것을 많이 보아온지라 이사진을 올리는 자체도 겁이 난다. 하도 험한 세상이라....어느 곳의 연리목이 두나무가 송두리째 없어졌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었는데 하는 생각에 잠시 인생을 생각해보게 된다. 그들의 인생 말이다. 무엇이던지 돈으로 환산을해 금전만능을 만들어가는 그런 인간들....

[하고초의 꿀맛에 정신이...]

어느 정도 올라왔을까 우측에 커다란 나무와 굴이 보인다. 글쎄 어느 것이 먼저 눈에 띄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아마도 장사송이 눈에 띄어 옆을 보니 진흥굴이 보였는지?.... 아무튼 일부러 파놓은 것 같은 굴이 보인다. 입구에는 진흥굴이라 안내판에 쓰여있다. 계단을 올라 안으로 들어가 보니 밖에서 보는 것 보다는 훨씬 넓고 깊다. 안에서 밖을 찍으려는데 거리가 안맞는다 훨씬 뒤로 가야 동굴이 전부 잡힌다. 혹씨 24미리 렌즈가 있다면 몰라도... 그래서 불공드리는 곳으로 올라서니 거리가 잡힌다. 그러나 모시어져 있는 부처님 앞까지 들어가게 된 것이다. 천상 고마움의 절을 안할 수가 없었다. 종교를 떠나서.....

[진흥굴 오르는 계단과 입구...]

[진흥굴 안에 넓직한 공간이...]

"진흥굴(眞興窟) - 이굴은 숭불왕(崇佛王)으로 유명한 신라 24대 진흥왕이 부처님의 계시를 받아 당시 백제땅인 이곳에 의운국사를 시켜 선운사를 창건케 하고, 왕위를 퇴위한 후 선운사을(를) 찾아 수도했다는 암굴이다. 또한 진흥왕은 그의 중애공주와 도솔왕비의 영생을 위해 이 굴 윗 산에 중애암을 그리고 만월대 밑에 도솔암을 각각 세웠다고 한다. 선운사 본당에서 서쪽으로 2km지점에 위치한 이 굴은 길이 10m, 높이 4m의 동굴이다." 라고 소개한다. 그런데 벌써 두곳의 안내판에 맞춤법이 두군데나 틀려있는데 고치는 사람도 지적하는 사람도 없었나 보다. 고창과 선암사에 연락을 취해봐야.....

[진흥굴 안쪽에서 밖을...]

[고창 삼인리 장사송(高敞 三仁里 長沙松)...]

"고창 삼인리의 장사송 - 천년(연) 기념물 제 354호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 이 나무의 나이는 약 6백년으로 보이며, 높이는 23m, 가슴높이의 둘레는 2.95m이다. 이 고장의 옛 이름인 장사현을 본 따 장사송이라 하였으며, 나무 앞에 있는 진흥굴(眞興窟)과 관련지어 진흥송 이라고도 부른다. 소나무처럼 보이지만, 40cm 위에 가지가 난 흔적이 있어 반송(盤松)으로 분류하였다. 17m나 되는 긴 줄기가 우산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간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다. 주변에 장사송이라고 새긴 비가 있으며 비 뒷면에는, 이 곳에서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다 숨진 여인의 넋이 극락장생 했다는 전설을 적어 놓았다." 고 안내판에 쓰여져 있다.

[도솔암 찻집...]

[도솔암찻집 앞의 솟대들...]

새 울고 나비 날아다니는 길목을 얼마나 걸었을까 이제 염불소리가 귓전에 들려온다. 거의 다 왔다는 소리인 것이다. 위쪽을 보니 멀리 도솔암 찻집이 보인다. 약간의 가파른 언덕을 올라서니 도솔암도 보이고 예쁘게 지어놓은 "도솔암찻집" 이란 간판의 건물이 보인다. 앞 쪽에 솟대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찻집 앞에 예쁜 꽃이 진열되있다. 찻집 바로 위쪽에 도솔암이 자리하고 있다. 꽤나 역사가 깊을 것 같은 그런 건물이었는데 현판을 보고 의아해 하였다. 건물 가운데도 아니고 우측에 걸려있는 현판에 도솔암이라는 글이 쓰여있는데 그 도(兜)자가 문제였다. 내가 알기로는 두(兜)자로 알고 있는데 도자로도 쓰이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혹시나 해서 옥편을 찾아 보았지만 역시 투구 두자라고 나와있다. 다시한번 알아 봐야겠다.

[도솔암 암자...兜자는 투구 두자 인데??...]

[도솔암 나한전 오르는 길목에 ...]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禪雲寺 兜率庵 磨崖佛) - 보물 제 1200호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 고려시대에 조각한 것으로 보이는 이 불상은 우리 나라에서는 가장 큰 마애불상 중의 하나로 미륵불로 추정된다. 지상 6m의 높이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불상의 높이는 5m, 폭이 3m나 되며, 연꽃 무늬를 새긴 계단모양의 받침돌까지 갖추었다. 머리 위의 구멍은 동불암이라는 누각의 기둥을 세웠던 곳이다. 명치끝에는 검단(黔丹)스님이 쓴 비결록을 넣었다는 감실(龕室)이 있다. 조선 말에 전라도 관찰사로 있던 이서구가 감실을 열자 갑자기 풍우와 뇌성(雷聲)이 일어 그대로 닫았는데, 책 첫머리에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본다" 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고 전한다. 이 비결록은 19세기 말 동학의 접주 손화중이 가져갔다고 한다." 고 쓰여져 있다.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옆의 작은 동굴입구...]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옆의 작은 동굴 안의 촛불들...]

도솔암 경내를 지나 조금위로 나한전이 자리한다. 그리고 도 내원궁으로 오르는 계단의 입구도 보인다. 그러나 궁금한 것은 마애불이다. 항상 이상하게 생각해온 것이 "도솔암 마애불은 왜 울쌍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었다. 오늘에야 확인을 해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아닌가?....찬스가 아니고 기회이겠지...하며 마애불 앞으로 달려갔다. 이곳도 경기도 용미리의 쌍미륵불의 앞쪽 모양 카메라 렌즈의 한눈에 안잡힌다. 밑으로 내려가 보았으나 헛수고 였다.

다행이도 나한전 앞 쪽의 텃밭을 지나 밑에 쪽에서 찍으니 위의 기다란 사진을 얻을 수가 있었다. 마애불이 새겨진 커다란 바위 위에는 도솔암 내원궁 건물이 지어져 있다. 그리고 마애불 옆에는 자근 동굴이 있다. 운치있게 통나무로 문을 만들어 달아놓았는데 그 안쪽에 깊은 동굴이 만들어져 있었다. 뚱뚱한 사람은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의 틈새로 비집고 들어가니 그곳에도 불공들이는 많은 초들이 환하게 동굴을 밝히고 있었다.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옆의 작은 동굴 안에서 밖을...]

[도솔암 나한전(羅漢殿)...]

"나한전(羅漢殿)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 110호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 조선말기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이 건물은 나한, 즉 아라한을 모시는 곳이다. 아라한은 소승불교의 수행자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성자(聖者)를 지칭한다. 조선시대에 도솔암 용문굴에 살던 이무기가 마을 주민들을 괴롭히자 이를 물리치기 위하여 인도에서 나한상을 들여와 안치 하였더니 이무기가 사라졌으며, 이후 이무기가 다시는 나타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 건물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고 쓰여있다.

[도솔천 내원궁 입구의 문...]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禪雲寺 兜率庵 內院宮)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 125호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 천인암(千인岩)이라는 기암 절벽과 맑은 물이 흐르는 깊은 계곡 사이에 자리한 내원궁은 고통 받는 중생을 구원한다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신 곳으로, 상도솔암이라고도 부른다. 거대한 바위 위에 초석만을 세우고 만든 이 건물은 작은 규모이지만 매우 안정된 느낌을 준다. 이 내원궁은 통일신라 때부터 있었다는 말도 전하나, 현재의 건물은 조선 초기에 짓고 순조 17년(1817)까지 몇차례 보수한 것이다. 서쪽 암벽밑에는 석불이 새겨져 있다." 라고 내원궁의 역사를 전한다.

[도솔암 내원궁 오르는길...]

도솔암 내원궁 오르는 돌계단을 오르며 문득 지난번 티븨에서 봤던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 계단의 수가 108개이며 또 이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소원을 빌면 꼭 한가지는 들어준다던".... 그래서 오르며 굉장히 힘들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108개라는 생각에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108개정도면 단숨에 오를 수 있는 숫자 아닌가?...물론 경사도가 문제이겠지만 더 많은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 얼마나 많은가?...참 그리고 오르면서 성산한테 한 이야기이지만 대구 팔공산 갓바위 오르는 것에 비하면 이곳 오르는 것은 고행이라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소원을 들어 주신다니 건강을 빌 수밖에....

[내원궁 입구에서 내려다본 맞은편 바위와 등산로 계단...]

[내원궁에서 바라본 맞은편 바위모습...]

[내원궁 정면의 아름다운 풍광...]

내원궁에 오르니 전망대가 따로 없다. 산 정상에나 오른 것 같이 현기증이 날 정도로 높은 곳에 위치한다. 암자의 위치도 멋지겠지만 앞에 펼쳐 저 있는 돌산들의 모양도 형형 각색으로 보는 각도에 따라 천차만별의 모양을 뽐내고 있었다. 어쩌면 이곳에 오른 사람들이 공통점 이라면 내려가기가 싫을 정도였다는 것일 게다. 한참을 서서 위쪽도 바라보고 아득한 절벽밑 쪽도 내려다보며 무엇을 생각했는지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아니 그시간은 내 인생에서 볼 때 찰라였을지도 모른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내딛어 계단을 하나하나 세며 내려왔다.

[내원궁 위의 돌산에 ...]

[내원궁 뒤뜰에서 입구 쪽을...]

[내원궁 담장과 바위산 전경...]

[내원궁에서 내려다본 도솔암 경내...]

[도솔암에서 선운사 경내로 내려오는 길목에 이름모를...]

도솔암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발걸음은 그야말로 날아갈 것만 같은 그런 기분 이었다. 지금생각해도 이유는 모르겠다. 내려올 때는 개울 좌측길을 택하였다. 숲속이라 컴컴함도 있지만 시원함도 같이하기에 이길을 택하였다. 내려오는 길목에 이름모를 석상이 웅쿠린 자세로 맞이해준다. 잘 내려가라는 듯이....선운사를 다녀왔다는 사람들치고 선운사 마당에서 이리보고 저리보다 동백숲이나 보고 선운사 다녀왔다는 사람들이 애석하다며 도솔암에 찬사를 아끼지 않으시던 어느 님의 목소리가 쟁쟁한 가운데 정말 오늘에서야 그 말씀의 의미를 알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어찌 도솔암을 빼고 선운사를 이야기 할 것인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