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남해 창선에서 고성으로.... by 도시애들

 

남해 창선에서 고성으로...


 
지죽리 죽방렴과 물쌀빠른 지죽해협을 바라보며 창선교를 건너 창선면에서 보는 남해도도 또한 매력적이었다. 이래서 같은 곳을 촬영을 하더라도 보는 이의 각도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그림을 연출할 수 있는 것 같다. 너무 경치가 아름다워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우리는 차를 세워놓고 남해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마음을 비웠다. 빈가슴에 선뜻 눈에 들어오는 꽃이 있었다. 딸기꽃인데 이꽃은 멍석딸기라 한다. 산기슭으로 주욱 이어지다 싶이 피어있는 딸기가 너무도 아름 다웁다.

[멍석딸기...]

[멍석딸기 잎까지 같이...]

[장고섬...]

[각도에 따라 장고섬이 한 개로 보인다...]

[넝쿨의 신비함이...]

[자그마함 봄까치꽃...]

창선교를 넘으면 답답한 것 같던 마음이 확 트이는 바다에 더욱 시원한 마음을 안겨준다. 멀리 아득히 보이는 남해의 망운산자락과 대국산같이 높은 봉우리들을 보며 또 그 앞의 작은 등대들과 조그만 섬들이 어울어진 표정들이 그저 입을 다물 수가 없게 만들고 있다. 얼마를 달렸을까 신흥리, 광천리, 서대리를 지나 율도를 지나는데 또 밤색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왕후박나무 표지판이다. 얼른 좌회전을 하여 밑으로 내려서는데 길이 외길이다. 천천히 내려가 나무를 지나니 차를 세울 만한 공터가 있었다. 이곳에 차를 세우고 엄청나게 커다란 후박나무를 뱅글뱅글 돌며 신기한 눈으로 들여다 보았다.

[남해 창선 대벽 왕후박나무...]

"창선면 단항마을에 영검있는 나무 한 그루가 500여년 넘게 의연한 모습으로 서 있다. 천연기념물 제299호 왕후박나무. 신상 명세는 높이 9.5m. 밑둥에서 부터 뻗어 나온 가지가 무려 11개. 한쪽에서 다른 쪽까지 가지 길이가 21m나 되는 마치 우산을 펼쳐 놓은 것 같은 장방형의 우아한 자태가 기품이 넘친다. 옛날 옛적 단항마을 어부 한사람이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큰 고기 한마리를 잡았는데 뱃속에서 씨앗이 나와 뜰에 심었더니 하루가 다르게 나무가 자라 더란다. 주민들은 이 나무를 동제 나무라 칭하며 해마다 음력 섣달 그믐날 정성스레 동제를 올리며 풍년 풍어를 빌었다." 라는것이 왕후박나무에 얽힌 내력이다.

"단항마을 주민들이 더위 걱정없이 여름을 나는 곳. 농사 정보가 교환되고 세상사가 있고, 더러 말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해 기울기 일러 막걸리 한사발에 다시 웃음사래 피는 곳. 노동의 피로를 씻는 쉼터요, 마을문화가 꽃피는 정자며 농사정보센타요, 마을이란 공동체를 밀고 가는 힘의 원천도 정자나무에서 나온다. 화가 손장섭이 있다. 일찍이 현실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해왔다. 광주의 비극, 시위현장, 철책선 등의 주제가 화폭을 장식했다. 그러던 그의 예술에 이제 이 땅의 신목들 만이 무성하게 들어 찼다. 시각예술은 간단히 정의하면 상징이다.

그것은 하나의 현실은 아니지만 수많은 현실이 축적돼 한 그릇의 탕약으로 쥐어짜진 삶과 역사의 이미지다. 상징성이 뛰어날수록 그 예술은 뛰어나다. 손장섭은 이 부분에 깊이 착목했다. 그의 그림에 '남해 창선 왕후박나무'가 나온다. 그가 그린 신목 들은 민중들의 상징이기도 하다. 조선 초 이 마을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고기잡이를 하며 외로이 살았다. 하루는 할아버지가 큰 고기를 한 마리 잡아왔는데, 뱃속에서 씨앗이 나왔다. 이상하게 여겨 마당에 심었는데, 나무가 크게 자라 사람들이 모여와 살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신령스런 나무에 해마다 섣달 그믐에 동제를 지내고 풍어와 풍년을 빌어 왔다.

왕후박나무에 전해오는 이야기다. 임진왜란 때 병사들이 이 나무 그늘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쉬어 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때 이 마을은 온통 대나무들로 뒤덮여 있었는데, 노량해전이 벌어지기 바로 전 이순신 장군은 이곳 대나무를 잘라 떼 배에 싣고 갔다. 노량해전이 벌어지자 떼 배의 대나무를 짚불에 태웠다. '빵! 빵!' 대나무 마디 터지는 소리에 왜병들이 넋을 잃고 도망을 쳤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의 거룩한 향기가 이곳 왕후박나무에도 베어 있구나. 집안이 어려우면 어진 며느리가 생각나고 나라가 어지러우면 충신이 생각난다고 하였던가. 어지러운 세상, 우리는 지금 충신이 그립다.

세상이 혼탁하고 나라가 위기에 처하였다. 옛날에는 오랑캐들이 총칼로 성스런 이 땅을 짓밟았지만, 지금은 자본과 기술로 이 땅을 짓밟는다. 옛날에는 남쪽의 왜구와 북쪽의 오랑캐만 막으면 되었지만, 지금은 눈이 푸른 오랑캐까지 감당해야만 되는 세상이다. 성세에는 성군인 나오고 난세에는 영웅이 나온다. 성세에 나온 성군으로는 세종대왕이 있고, 난세에 나온 영웅으로는 이순신 장군이 있다. 조선말엽에는 성군도 영웅도 나오지 아니 하였다. 그리하여 나라를 왜인들에게 넘겨주었다. 조선말엽, 인물은 숨어 버리고 뱀과 올빼미의 무리들이 설치고 다녔다. 나라가 위태로운 지금, 성군과 영웅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고 남해군의 인터넷사이트에 서술되어있다.

[왕후박나무 밑둥의 모양...]

[왕후박나무 열매...]

[후박나무 근처들판에 괭이밥꽃...]

[후박나무 근처들판에...]

창선 대벽리에서 삼천포 대방동까지 이어지는 다리는 모두 다섯 개이다. 제일 첫 번째다리가 단항교(창선 대벽리)로 흔히 볼 수 있는 다리모양이고 두번째가 창선대교(창선도~늑도) 3개의 아취형다리로 되어있다. 사진에 나와있는 빨간 다리이다. 세번째는 늑도대교(늑도~초양섬)로서 이 다리도 다리간격은 넓지만 보통 다리 모양이다. 네번째 초양대교(초양~모개섬)는 반원의 아취형 다리이다. 마치 창선대교의 가운데다리와 비슷하다. 다섯 번째 삼천포대교(모개~사천시 대방동)는 서해대교같이 사장교로 되어있어 시원한 느낌을 준다. 이다리를 건너는 시원함도 있지만 건널 때마다 동네를 둘러보는 재미도 있다. 각 다리마다 섬을 연결한 것이라 다리하나 마다의 동네가 독특한 맛을 보여준다.

[두 번째 다리인 창선대교...]

[단항포구에서 올려다본 창선대교...]

[단항포구에서 잡아온 수산물 손질을 하고계신...]

[단항포구가 이젠 관광지가 되었다...]

역부러 다리를 건너기 전에 단항으로 내려왔다. 이곳에서 보는 바다의 모양은 또 창선면 오룡쪽에서 보는 모양과 틀릴 것이 분명하기에 단항포구옆 유람선 선착장에 주차를 하고 멀리 삼천포쪽을 보며 가슴을 열었다. 멀리 발전소로 보이는 곳이 있는데 항상 궁금하다. 이번엔 고성쪽으로 가니까 꼭 알아봐야지 하며 다짐을 했지만 또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멀리 삼천포와 고성이 한눈에...]

[삼천포쪽을 바라보며 출항하는 어선을...]

[고성쪽으로 보이는 발전소같은 곳...]

[열심히 포즈를 취하며 우리쪽으로 미끄러지듯 달려오는 어선이...]

[낚시꾼들을 태우러 부지런히 이쪽으로 오시는...]

[기린초가 군락을...]

[기린초...]

[고성을 지나며 쉬어가는 길에...]

[충무를 지나며 쉬어가는 길에...]

부지런히 달려오며 항상 지나던 길이라 사진도 안찍고 왔지만 벌써 12시가 훨씬 넘었다. 허긴 무지하게 빨리온 것은 사실인데도 마음은 꽤 하루나 된 것 같다. 5시간 여 동안 곡성에서 거제까지, 그것도 남해를 한 바퀴 돌며 왔다는 것이 되돌아보면 내가 생각해도 신기한 정도이다. 이제 거제대교가 보인다. 항상 새다리로 다녔는데 오늘은 거제의 좌측해안을 돌기 위해 구거제대교로 건너 설레임을 간직한 거제도에 도착을 하게 되었다. -<끝>-


여행일시 : 2004년 06월 01일, - 글 / 그림 - [김영윤의 여행보따리] 도시애들 배너


덧글

  • jong5629 2005/06/03 17:57 #

    발전소 같은 곳은 삼천포(현재 사천시) 화력 발전소입니다
  • 도시애들 2005/06/03 22:16 #

    네...나중에 또한번 지나며 알았습니다.
    삼천포화력발전소라 하더군요...
    코끼리 바위 보고싶어요..ㅎㅎㅎㅎ
    시간상 그냥지나치는 바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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