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_전북 남원시 산북동 교룡산성에 가면.... by 도시애들


오늘은 항상 지나치기만 했던 남원의 교룡산성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이어 남원에 도착해 시내를 관통 서문삼거리 지나니 동충동의 남원성을 복원해 놓아 이곳에 눈이 끌려 한참을 돌아다니다 다시 출발을 해 만인의 총 앞을 지나고 새로생긴 넓은 도로밑을 지나 교룡산 국민 관광지에 도달하게 되고 이어 약간의 비탈진 언덕길을 넘어서면 자그마한 주차장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올려다 보면 교룡산성 입구가 나를 반긴다. 교룡산성에 대해 알아보면 남원 시내에서 북쪽으로 2km정도 떨어진 교룡산 중턱에 있는 산성으로 백제시대때 신라와의 접전을 위해 처음 쌓았다고 전해지며 임진왜란 당시 금산사에서 의거한 승병장 처영이 크게 수축하였다고 한다.

남원 지역의 여러 산성 중에서 그 형태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교룡산성은 교룡산 중턱을 둘러싼 약 3km의 규모로 잘 다듬은 돌을 이용하여 튼튼하게 쌓았으며 성안에는 99개의 우물과 작은 골짜기, 군창 등이 있었고 동서남북의 4대문이었으나 현재는 동문(홍예문)과 동서간 남벽이 남아있습니다. 홍예문을 들어서면 좁은 비탈길 옆에 교룡산성을 지켰던 무관 별장들의 지적비가 있는 비석군이 있는데, 이것은 남원읍성과 함께 군사요새지로서 중요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갑오 농민 전쟁시 운봉과 여원치 전투를 벌였던 김개남 장군이 이곳에 주둔하여 군사 훈련을 하기도 했다. 정유재란 때 이곳에 곡식과 무기, 소금, 장을 보관하는 저장고가 있었으며,

[교룡산성 들어가는 초입에 만인의 총이 자리하고 뒤로 교룡산이...]

남원성의 관군과 백성이 교룡산성에서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원군으로 와 있던 명나라 장수 양원이 평지인 남원성에서 싸우기를 고집하여 결국에는 작전상의 이유로 성안의 시설과 성벽이 많이 파괴되었다. 성안에는 선국사라는 사찰과 다수의 문화재가 있으며 교룡산을 중심으로 하는 체육시설과 국민 관광단지가 조성되어 휴식과 고장의 역사를 배우는 공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교룡산성 들어가는 길목은 고즈넉 하기만...]

[이곳에도 여지없이 단풍은 들어가고...]

[주차장을 향해 오르는 언덕에서 보이는 교룡산성의 높은 성벽...]

[첫번째 만나는 교룡산 등산안내판...]

[교룡산성 입구 동문(홍예문)을 감싸고 있는 옹성...]

교룡산성은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었고, 남원시에서 관리하고 있다.해발 518m인 교룡산()의 험준함에 의지하여 축조된 석축산성()으로 둘레가 3,120m이다. 현재 동문의 홍예(예)와 옹성() 그리고 산중턱의 성벽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남원은 백제 때 고룡군()이라 불렀다 한다. 그러나 삼국사기 등 사서에 보이는 교룡()·거물()·기문() 등의 명칭이 모두 고룡의 전사()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산성이 백제 시대에 쌓았다고 확증할 수는 없다. 다만 조선 초기에 이미 군창()이 있었다는 《세종실록지리지 ()》의 기록을 보면 그 연혁은 조선 초기 이전으로 소급된다.

[옹성위로는 멋진 나무와 하늘이...]

동국여지승람()》〈남원부() 산천조()〉에도 교룡산성이 남원부 서쪽 7리에 있다는 기사가 보인다. 축성의 내력에 대하여는 명확하지 않으나, 택지()나 형식으로 보아 삼국시대 백제의 축성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기록상으로는 임진왜란 중인 선조 25년(1592)에금산사()에서 의거한 승병장 처영()으로 하여금 성을 쌓게 하였다 한다. 그 후 선조() 30년(1597)에는 남원부사 최염이 주변 일곱 고을의 군사를 징발하여 수축하였고, 숙종() 때에도 수축공사가 있었다. 성은 교룡산의 동쪽 수구()에 동문을 설치하고, 산세에 따라 양쪽의 능선을 감싸고 있는 석축산성이다.

[옹성을 들어서며 느끼는 ...]

동문은 옹성()에 쌓여 있어 남쪽에서 성벽을 따라 들어가다가 다시 서쪽으로 ㄱ자형으로 꺾인 곳에 홍예문이 있다. 홍예문의 측면은 장대석을 3단으로 쌓고, 그 위의 액부()는 아홉 개의 돌을 아취형으로 맞춘 것이다. 가구는 매우 단조로와 금산사 입구 홍예문보다 뒤떨어지는 것 같으나 처영이 당초 금산사에 머물렀던 것을 미루어 볼 때, 양쪽의 성문은 그의 중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안에는 우물이 99개나 있었고, 계곡도 있어서 유사시에 주변의 주민들을 징발하여 성을 지키기에 좋은 곳이었다. 북쪽으로는 밀덕봉()·복덕봉()의 험준함이 있고 서쪽도 험준하여 남북이서로 바라다보이지 않는다.

[둘레 3km넘은 성벽의 ...]

성을 지키는 책임은 남원부사(使)와 별장()이었고, 성 안에 용천사()가 있었다. 동문안 북측에는 몇 개의 기적비()가 있는데, "천총이진택중건기루 영세기속숭정5년병자5월일( )"이란 글이 새겨져 있음을 보아, 인조 14년(1636)에 이 동문초루()가 중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남원지역 20여 개의 산성 중 그 형태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성으로, 성벽 구조가 한국 성곽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고 엠파스에서 알려준다.

[교룡산성의 동문인 홍예문...]

[다른 성문에 비해 조금 규모가 작은감이 드는데...]

[성을 지키는데 많은 공을 세운 무관 별장들의 지적비군...]

[홍예문을 안쪽에서 보면 좀더 높아 보이기도...]

[홍예문 옹성에 올라 문을 내려다 보면...]

[동문 끝에 올라서 보면 넓은 공터까지...]

[동문에서 서문쪽으로 복원된 남벽을 오르면서 내려다본 동문쪽...]

[계곡을 넘어서면 바로 가파른 성벽을 올라야 하고...]

[이곳에서부터 서문쪽으로 넓지 않은 성벽이 복원되어 있고...]

[높은곳은 4.5m 라는데 이곳은 흙이 쌓여서인지 높지 않아...]

[비탈진 남벽의 성벽은 잘 다듬어진 돌로 이루어져 있고...]

[성벽에서 보면 밑쪽엔 선국사가 그리고 위로는 교룡산 정상이...]

[이곳 남벽의 제일 높은곳으로 보이는...]

[많은 답사 인구가 다녀간 듯...]

[남벽에서 내려다본 향교동쪽...]

[다시 남벽을 거슬러 오르면...]

[넓은 평지같은 곳도 나오고 이곳의 조망은 좋은편...]

[작은 계곡을 돌아가는 성벽은 높기만...]

[성벽에서 내려다본 남원시내 쪽...]

[얼마를 올랐을까 교룡산 정상이 코앞에 보이고...]

[멀리 장백산으로 보이는 멋진 하늘선이...]

[다시 남원시가 부옇게 보이고...]

[복원지역을 벗어나자 터널같은 낙엽길이...]

[아직 복원되지 않은 성벽이 많이 보이고...]

[성벽안쪽에 핀 이질풀꽃...]

[천하 ? 사 김성수(天下 ? 士金成洙)라고 쓰이긴 했는데...]

[군데 군데 멋진 암석들도...]

[산불이 났던 곳으로 추정되는 좌측봉우리 정상부분은 황폐되고...]

[이제 성벽은 없어지고 가는길도 좁은 등산로 뿐...]

이곳에서 갈등이 생긴다. 이젠 서문이 있던 자리를 끝으로 더 이상 성벽의 자리는 발견을 못하였다. 이곳 거의 정상부엔 삼거리가 나선다. 아마도 우측으로 가면 전망대나 체육공원이 나올 것 같아 성산은 그 쪽으로 내려가게 하고 나는 정상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 삼거리에서 정상까지는 생각보다 꽤 멀다. 그리고 이길은 정식 등산로가 아닌 관계로 거의 숲을 헤치고 올라야 하는 정도이다. 또하나의 난관은 이제 정상밑 삼거리에 도착을 했는데, 정상은 100미터남았고 성산과의 통화는 이루어 지질 않아 그냥 선국사 쪽으로 하산을 하고 만다.

[정상 바로밑 삼거리 이정표엔 성터에서 600m로 되어있고...]

[주위와 어우러져 예뻣었는데 사진으론?...]

[성산이 내려온길과 만나는 체력장 밑 삼거리...]

[은행잎으로 뒤덮인 돌계단은 산속 정취를 물씬...]

[교룡산성안 민가가 몇채 있어...]

[무엇인가 말을 할 것 같은 꽃봉우리...]

[많은 물봉선꽃 중에서 제일 예쁜 물봉선으로 당첨...]

[교룡산성내에 거주하고 있는 살림집들...]

[교룡산성 동문인 홍예문을 나서며 다시한번...]

[다시 교룡산성을 빠져 나오며 한컷...]

이 교룡산성에는 별장청, 장대, 곡성창, 구례창, 염고, 장고, 군기, 산창 등 군사시설과 전쟁에 대비한 각종 저장고 등이 있었다고 하며, 산성 안에 설치되었던 여러 가지 시설들 알아보면 장대는 장수의 지휘대로 유사시 군사들의 통솔에 용이하도록 설치한 것이고, 군기는 군대에서 필요한 각종 무기류 및 군용품을 제조하여 보관하던 창고이고, 산창은 유사시를 대비해 남원성의 주민들이 모두 대피해 사용할 모든 생필품을 보관하던 창고라고 한다.구례창은 산창과 기능이 같으며 구례현 주민들이 사용한 물건을 보관하던 장소이고, 곡성창도 마찬가지로 곡성현 주민들의 물건을 보관하던 장소이다. 장고는 소금에 절인 장아치류의 음식을 보관했던 창고이고 염고는 소금을 저장해 둔 창고이다. 별장청은 무관 별장들의 숙식과 직무를 맡아 보던 장소라고 한다. 정말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지를 완전히 복원한 모습을 다시 보고 싶어진다. -<끝>-


덧글

  • 가을남자 2007/12/11 04:32 #

    많은 물봉선 중에 제일 예쁜 물봉선으루 당첨된거여...ㅎㅎ
    내 등뒤에서 찍은 거 있슴 다고...
  • 도시애들 2007/12/11 05:31 #

    내려오는 동안 내내
    물봉선이 흐뜨러지게
    피어있는데 그래도 역쉬
    맘에 드는 넘은 있더라공..ㅋㅋㅋ
  • 2007/12/11 04:3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7/12/11 05:3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07/12/11 06:1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07/12/11 06:1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無學 2007/12/11 07:52 #

    무하기는 아직 저산 다 오르지 못햇어요 ㅗㅗ
    그냥 입구에서나 보고 오지요 ㅎㅎ
  • 도시애들 2007/12/12 08:03 #

    우린 산성으로 돌아올라서 그렇지
    입구에서 바로 오르면 한시간도
    안걸린 답니다. 함 오르세요
    경치가 좋아요...빙돌아서..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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