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_전남 해남군 송지면 미황사에 가면-1.... by 도시애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해남의 미황사 이다. 물론 가을을 따지자면 단풍이 우선이겠지만 여짓것 내가 찾아다닌 사찰의 수가 꼭 108번째가 되는 곳을 이 미황사로 잡았기에 이번 여행에서는 사찰을 찾아보지를 않았다. 물론 다닌 사찰의 수는 이것보다 더 많겠지만 카메라를 못챙기고 간 사찰도 있고 또 자료가 없어진 곳도 있고 또 가고 싶어도 그렇게 일이 생겨 못가던 해인사도 한여름에 다녀와 이젠 모두 성취한 기분이었는데 가을 여행을 준비하며 사찰일 세어보니 107군데 째로 들른 곳이 지난 8월 초하루에 귀경하며 들러 본 공주 신원사이다.

그래서 이번 가을 여행에서는 미황사를 108번째의 사찰로 목표를 삼았기에 아무 사찰도 들르지 않고 여행을 다니게 되었다. 완도를 끝으로 완도대교를 넘어 13번국도를 이용 공사 중인 방두 마을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서정지를 지나 작은 휴식터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이내 올라 미황사 주차장에 도착을 하였다. 미황사 주차장은 삼단계로 되어있다. 우리는 중간주차장에 차를 대고 우측도로를 이용 가파른 길로 올랐다. 미황사에 오르는 길목에선 달마산이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게 보인다. 이제 미황사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미황사를 품고 있는 달마산...]

땅끝 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미황사는 우리나라 최남단에 있다는 것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찰이다. 그리하여 미황사는 바다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창건이야기, 중창이야기를 비롯 경내의 성보에도 바다 냄새가 가득한 사찰이다. 미황사의 바다는 부처님 세계이며, 부처님 나라로 가는 길이다. 땅끝은 중생들에게는 삶의 종착역이지만, 수행자들에게는 또 다른 시작이다. 부처님나라 서방극락정토로 항해하는 배에 승선하는 항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황사는 새로운 시작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수행공간이다.

"미황사사적비"에 의하면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때 인도 국왕이 한 척의 배에다 법화경과 화엄경, 비로자나 및 여러 불상과 불화를 가득 실고 달마산 아래 사자포구(獅子浦口)에 들어와 이를 의조(義照) 스님이 옮겨 봉안하게 되면서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이야기를 살펴보면 미황사의 불법은 부처님 나라에서 직접 전해 받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깨달음을 이룬 선지식인들이 부처님 나라로 가는 길이 바로 미황사라고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부처님 나라로 항해하는 배에 승선하기 위한 중생들의 발원과 수행의 흔적이 미황사 곳곳에 남아있다.

[마당에 올라서면 보이는 미항사 경내의 첫건물 자하루가 돌계단 위로 보이고...]

대웅보전 4개의 초석을 살펴보면, 게와 거북이, 자라들이 바다 속에서 노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다. 또한 깨달음을 증득하고 적멸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계신 부도전의 세계에 가보면, 선지식들이 성취한 깨달음의 세계마다 거북이 자라 가재 게 등 바다 물고기와 노루 토끼 다람쥐 새 사자 말 같은 동물 그리고 연꽃과 화초들이 장엄하고 있으며, 용은 깨달음의 세계를 호위하고 있다. 미황사는 끝과 시작을 함께 공유한 시간적 공간입니다. 수행의 시간을 통해 불법의 진리를 깨달으며 부처님 나라로 항해하는 배를 탈 수 있는 공간을 부여받게 되는 도량이다. 라고 "코리아템플"에서 알려준다.

[좌측엔 차향이 풍기는 전통찻집이...]

[우측 선방으로 가는 길목에 커다란 단풍나무가 눈길을...]

[단풍나무 밑에서 올려다본 달마산 하늘선...]

[경내로 들어 가려면 돌계단을 올라 자하루 밑으로 들어서야...]

[정면에서 보면 자하루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우측 축대위에서 보면 만세루라는 현판이...]

미황사 중심영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누각으로 2001년에 다시 지었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누각형 맞배집이다. 하층 어칸을 통로로 사용하고 좌우는 각각 벽과 문을 달아 사용하고 있다. 상층은 전체적으로 트인 한 공간으로 한문학당이나 수련회 등 대규모 행사 때 사용하고 있다. 출입은 배면으로 드나드는데 어칸을 중심으로 좌우 끝에서 두 번째 칸 앞에 통로용 목조다리를 가설하였다. 큼직한 자연석으로 기단을 쌓았으며 초석은 널찍한 자연석을 놓았다. 초석 위에 누하주를 세웠는데 정연하게 치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휜 목재를 그대로 썼다. 누하주 기둥머리는 귀틀로 짜서 상층 마루바닥을 형성하였다.

[자하루 정면엔 두걔의 입구 나무다리와 만세루라 쓰인 현판이 걸려있고...]

누상주 기둥머리는 창방을 결구하고 익공을 짰는데 출목 하나를 두었다. 주간에는 장혀 밑에 화반 하나를 각 칸마다 끼웠다. 화반 모양은 일반적인 화반과 달리 게, 사자, 등을 맞댄 거북이, 꽃 등을 새겨 수중생물과 인연 깊은 미황사의 건물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구조는 앞뒤 기둥 위로 거대한 대들보를 건너지르고 그 위에 동자주를 세워 종보를 받친 다음, 파련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친 5량가를 결구하였다. 천장은 구조를 노출한 연등천장이며 단청을 하지 않은 백골 상태이다. 처마는 서까래 위에 부연을 둔 겹처마로 구성하였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려 맞배로 만들고 기와골 끝은 막새를 끼웠으며 좌우에는 풍판을 달았다.

[나무다리가 약간 경사진 듯 한 것이 안정적으로...]

하층은 통로를 제외한 나머지 벽은 화방벽을 들였는데 정면과 배면은 살홍창을 설치하였지만 좌우 측면은 판벽으로 마감하였다. 상층 좌우 측면은 전체적으로 판벽을 치고, 전후면은 문을 달았다. 전면은 밑에 머름을 두고 위에 2짝 판문을 달고 그 안에 2분합문을 겹으로 설치하였다. 배면도 출입문을 단 칸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하부에 머름을 들였다. 좌우의 가장 끝 칸은 머름 위에 벽을 들이고 들창을 달았다. 어칸과 좌우 협칸은 머름 위에 2분합문을 설치하였다. 건물 측면의 상인방 위쪽에는 미황사 창건설화를 벽화를 그려 넣었다.

[담장엔 가을을 무르익어 가게 하는 담장이가 발갛게...]

[달마전(승방)뒤로 달마산 스카리라인이 정말 환상적이고...]

[기와공사가 한창인 대웅보전 뒤로는 달마산 바위들이 들쑥날쑥...]

[미황사 범종각(梵鐘閣)...]

범종이란 사찰에서 시간을 알리거나 의식을 행할 때 쓰이는 범음구를 말한다. 이 범종은 미황사의 누각 만하당과 동일 수평선상의 왼쪽에 위치하는 범종각에 모셔진 것이다. 2004년 범종각을 새로 지으면서 함께 조성하였다. 대개 근년에 조성된 범종은 통일신라 범종의 예를 따른 예가 많이 전하는데, 이 범종 역시 통일신라 범종의 예를 따랐다. 종정(鍾頂)에는 음통을 감싼 용뉴를 장식하고, 종신(鐘身) 상단과 하단에는 당초문이 장식된 상대와 하대를 둘렀다. 상대 아래로는 9개의 종유가 있는 4개의 유곽을 배치하고, 중앙 당좌(撞座) 위에는 ‘달마범종(達摩梵鐘)’이라 새기고 좌우에 4분의 공양비천상을 새겼다.

한편 종신에는 의례히 기록되는 시주자명이나 화기가 없는데, 다만 당좌 아래 ‘성종사(聖鐘社) 제112호’라는 제기가 있어 그 제작지를 밝히고 있다. 누각 바로 옆에 자리한 종각으로 2004년에 새로 지었다. '미황사대종중성기'에는 창건 때 조성한 종이 오래되어 도광 14년 즉 1834년에 새로 종을 조성했다고 하나 종은 물론 종각 흔적도 찾을 수 없다. 현재 종각은 평면 사방 1칸의 단층 건물이다. 장대석 기단 위에 원형 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워 창방과 평방을 걸고 다포계 공포를 짜 올렸다.

공포는 외2출목, 내2출목으로 내외 출목수가 같다. 내부 천장은 대들보 높이에 맞춰 우물반자를 가설하여 구조를 볼 수 없다. 처마는 서까래 위에 부연을 쓴 겹처마로 구성하였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려 모임지붕을 만들고 한가운데 돌로 만든 절병통을 장식하였다. 내부는 대들보 사이에 가로질러 보를 걸고 거기에 종을 매달았다. 바닥은 종구가 향한 바닥 부분만 약간 옴폭 팠는데 음향효과를 노린 시도이다. 대웅전 마당을 향한 면에 현판을 걸고 기둥에는 주련을 걸었다. 현재는 단청하지 않고 백골 상태로 두었다.

[미황사 종무소가 종각옆에 자리하고...]

[요사채의 담장이 아주 인상적이고...]

[대웅보전은 기와를 올리느라 분주한...]

[미황사 향적당...]

[미황사 뜰 옆 사각 우물이...]

[세심당근처 마당도 어지럽긴 마찬가지...]

[미황사 향적당을 우화당쪽에서...]

[미황사 우화당...]

[미황사 명부전(冥府殿)...]

명부전은 대웅보전 왼쪽에 자리한 전각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익공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현재 건물은 1997년 원래 자리에 새로 지었다. 내부에는 뒷벽과 측벽에 붙여서 ㄷ자형 불단을 조성하고 중앙에 지장보살삼존상을 비롯해 시왕상 등의 권속을 봉안하였다. 좌우 출입문에는 금강역사상이 시립해있는데 오른쪽의 금강역사 앞에 근년에 조성된 법고와 법고대가 모셔져 있다. 건물은 대웅전과 같은 높이의 석축 위에 있다. 자연석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널찍한 자연석 초석을 놓고 민흘림으로 치목한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는 창방을 결구한 뒤에 익공을 짰는데 1출목을 두었다.

주간에는 장혀 밑에 화반을 1구씩 받쳤다. 구조는 5량가로 짰는데 앞뒤 기둥 위로 대들보를 걸고 그 위에 종보와 종도리를 올렸다. 중도리 사이는 우물반자를 설치하였지만 그 외곽은 서까래를 드러낸 연등천장이다. 처마는 서까래 위에 부연을 쓴 겹처마로 구성하였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려 맞배로 만들고 기와골 끝은 막새를 끼웠다. 지붕 좌우 측면에는 풍판을 설치하였다. ㄷ자형 불단으로 인해 전면 3칸에만 출입문을 달았다. 어칸에는 4분합이며, 좌우 협칸에는 3분합문을 설치하였다. 다른 면은 벽을 치고 상하로 나눠 하부는 긋기단청으로 마감하고 상부는 벽화를 그려 장엄하였다.

[명부전 내부의 중앙불단...]

명부전은 대웅보전 왼쪽에 있다. 안에는 'ㄷ'자형 불단을 조성하여 중앙에 지장보살삼존상을 비롯해 시왕상 등의 권속을 봉안하였다. 중앙 지장보살상은 무독귀왕과 도명존자를 협시로 중앙 연화대좌에 결가부좌하였는데, 지장상만이 개금되었으며 화염문의 광배를 갖추고 있다. 얼굴은 원만상으로 가늘고 긴 눈, 작은 코와 입을 갖추고 있으며, 승문형의 머리를 하고 있다. 두 눈썹 중앙에는 백호가 있는데, 두꺼운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지 않았고, 신체는 건장하다. 법의는 두 어깨를 모두 덮는 통견식으로 걸치고,

가슴 아래 드러난 내의는 띠매듭으로 고정하였다. 광배는 주형(舟形)인데 외곽에 화염문이 두르고, 안쪽에는 5분의 두 손을 합장한 비천을 투각하였다. 지장보살상 옆으로는 합장인을 결한 도명존자와 함을 받쳐 든 무독귀왕이 시립하였으며, 그 좌우로 10분의 시왕이 의좌하고 있는데, 시왕은 각각 시자를 대동하고 있다. 이 외에 불단의 측면에는 금강저와 검을 들고 있는 2位의 금강역사가 좌우 입구 앞에 보좌하고 있으며, 오른쪽의 금강역사 앞에는 근년에 조성된 법고와 법고대가 모셔져 있다.

[금강저와 검을든 좌측 금강역사...]

[금강저와 검을든 우측 금강역사...]

[포근하게 자리잡은 요사채...]

[삼성각앞 석등이 눈길을...]

[미황사 삼성각 앞뜰에 서있는 섬세하고 아름답게 조각된 석등...]

[미황사 삼성각의 측면과 앞마당에 아름다운 석등이...]

대웅전과 명부전 사이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삼성각이 나온다. 현재 전각은 1998년에 새로 지은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익공계 맞배집이다. 내부에는 뒷벽에 일자형 불단을 조성하여 중앙에 칠성탱(七星幀)을 중심으로 산신탱(山神幀)과 독성탱(獨聖幀)을 봉안하였다. 건물 주변은 석축을 낮게 쌓아 일곽을 형성하였다. 기단은 모양이 가지런한 자연석을 외곽을 돌리고 운두가 높은 자연석 초석을 놓았다. 기둥은 민흘림으로 다듬은 원형기둥을 세워 기둥머리에 창방을 결구한 뒤 익공을 짰다.

주간에는 장혀 밑에 소로를 받쳤다. 구조는 간결한 3량가로 결구하고 천장은 구조를 드러낸 연등천장으로 마감하였다. 처마는 서까래 위에 부연을 쓴 겹처마로 구성하였다. 기와는 한식기와를 올려 맞배지붕을 만들고 기와골 끝은 막새를 끼웠으며 좌우 측면에는 풍판을 설치하였다. 정면에만 문을 달았는데 어칸에는 4분합문을, 좌우 협칸에는 2분합문이다. 문짝은 궁판을 두고 그 위는 띠살로 짰다.

[미황사 삼성각 칠성탱(七星幀)...]

삼성각 내부에는 뒷벽에 ‘一’자형 불단을 조성하여 중앙에 칠성탱(七星幀)을 중심으로 산신탱(山神幀)과 독성탱(獨聖幀)을 봉안하였다. 3폭의 불화는 모두 불기 2970년 계미년(癸未年, 1943)에 조성하였다. 칠성탱은 본래 중국의 도교사상과 불교가 융합되어 생긴 수명장수신(壽命長壽神)으로 일컬어지는 북두칠성을 표현한 것으로 화면 중앙에 치성광여래를 그 좌우에 일광 월광보살과 칠성을 묘사한다. 가로로 긴 폭의 이 칠성탱은 본존의 광배 뒤쪽으로 협시보살을 배치하고 좌우로 길게 태상노군(太士老君), 좌보필성(左補弼星), 우보필성(右補弼星) 등의 권속을 배치하고, 화면 좌우 상단에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칠성(七星)을 묘사하였다.

[미황사 삼성각 독성탱(獨聖幀)...]

삼성각 가운데에 걸린 칠성탱의 왼편에 걸려 있다. 일반적으로 독성탱의 독성은 천태산(天台山)에서 홀로 수선(修禪)하여 독성(獨聖), 독수성(獨修聖)이라 불리는 나반존자(那般尊者)를 일컫는다. 이 독성탱은 크기는 물론 제작시기도 산신탱과 같다. 근경에 소나무, 원경에는 천태산을 배경으로 희고 긴 눈썹을 가진 독성이 왼손에 염주를 들고 중앙에 앉아 있고, 차를 달이는 동자와 여인이 좌우에 작게 등장한다.

[미황사 삼성각 산신탱(山神幀)...]

삼성각 가운데 있는 칠성탱의 오른편에 걸려 있다. 산신탱의 크기는 97× 112cm인데, 그 앞에 노란 호랑이를 탄 산신상을 함께 모셨다. 그림의 구도를 보면, 화면 왼쪽에 포효하는 호랑이의 등에 걸터앉은 산신과 그 좌우에 동자와 천녀가 배치되어 있다. 동자와 천녀는 함께 봉안되어 있는 독성탱과 모습이 흡사하다. 배경으로는 근경에 소나무, 원경에 폭포가 표현되었다.

[가운데 있던 호랑이를 탄 산신상이 구석으로 밀려나?...]

[삼성각 내에 요령종이...]

[천불심 만불심 모아 밝혀놓은...]

[미황사 삼성각 벽화...]

[미황사 삼성각 벽화...]

[미황사 삼성각...]

미황사는 사찰의 규모는 크지는 않지만 건물과 건물사이가 좀 넓은 편이어서 답답함이 없는 그런 복잡한 가운데 한가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많아 인상적이다. 그리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석담들과 돌계단들이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야릇한 그런 맛을 볼 수 있었다. 이제 제일 위에 자리한 삼성각과 또 응진전을 돌아 다시 밑으로 내려가 공사 중이라고 어지럽게 만들어놓은 미황사 대웅전을 들여다 본다.


덧글

  • 고리아이 2007/12/02 16:36 #

    삼성각 벽그림이 참 독특하네요
    명부전에 있을 법한 그림인데... 말이어요
  • 도시애들 2007/12/02 18:18 #

    맞습니다 명부전벽화여요..
    사진 찍은순서에 착각을..
    삼성각엔 벽화가 없군요..ㅎㅎ
    세심하신 관찰력이 돋보이는...ㅋㅋ
    감사합니다...
  • 고리아이 2007/12/03 17:53 #

    헉!
    소가 뒷걸음치다 밟았네요
    굼벵이가 구르는 재주가 있네요^^
  • 도시애들 2007/12/04 23:21 #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우리의 역사를
    누구보다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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