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_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에 가면 -2.... by 도시애들


이제 성보박물관앞 주차장에 차량을 세워놓고 뙤약볕에 40여분을 올랐다. 물론 이곳저곳 돌아보며 오른 것이니 그냥 걸어만 올라오면 약 30분이면 올라올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 해인사 일주문앞에 서서 해인사에 대해 생각을 해보며 일주문을 지나며 모든 것을 잊어 버리고 그져 사찰의 분위기에 휩쓸려 보려 한다. 일주문 사이로 보이는 봉황문가지의 기다란 숲속길이 운치를 더해주어 서슴거림 없이 그대로 일주문옆을 통과하는데 일주문 안쪽에 홍하문(紅霞門)이라고 커다란 글씨가 쓰여있는 현판이 걸려있다. 우리나라 삼보사찰중의 한사찰이고, 또 5 대총림사찰중의 하나인 해인사라 그 규모도 대단하지만 넓이도 굉장히 넓고 속해있는 암자또한 넓게 퍼져 있어 아마도 해인사를 마음먹고 돌아보려면 일주일은 걸려야 할 것같은 그런기분이 든다.

해인사가 창건된 것은 "신라 의상대사의 법손인 순응(順應), 이정(利貞) 두 스님이 신라 제40대 애장왕 3년(802) 10월16일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창건 되었다고 하며, 해인사에 관한 종합적인 문헌으로 「가야산 해인사고적(伽倻山海印寺古籍)」이 있는데, 이는 해인사의 연기(緣起), 실화(失火)와 중창의 역사, 대장경의 인경(印經)에 관한 여러 사적과 문헌들을 모아 고종 11년(1874)년에 판각한 것이다. 이「가야산해인사고적」에 수록된 문헌가운데 똑같은 이름의 「가야산해인사고적」(고려 태조 26년에 이루어진 것)과 신라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신라가야산해인사선안주원벽기(新羅伽倻山海印寺善安住院璧記)」의 두 기록은 해인사의 창건에 대하여 비교적 소상하게 전해주고 있다." 고 해인사에서 알려준다.

[일주문을 들어서 진흙길로 오르면 봉황문이 저멀리서 반겨주고...]

[봉황문에 도달하기 전에 천년 노목이 역사를 말해주듯 서있고...]

[해인총림(海印叢林)이란 현판이 걸린 해인사 봉황문...]

[해인사 봉황문 안내문...]

[해동원종대가람(海東圓宗大伽藍)이라 쓰인 현판이 달린 해탈문(解脫門)...]

해탈문은 정면 6칸, 측면 2칸의 우진각지붕 건물로 동측에서 제3칸째에 솟을대문을 마련하여 출입문의 역활을 하고 있다. 해인사의 제3문으로서 초창연대는 알수없고 1490년 인수대비와 인혜대비가 중수할때 이 문도 새로 세우고 불이문이라 하였다 하나 화재로 인하여 19세기에 재건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 현판에는 해동원종 대가람(海東圓宗 大伽藍)이라 쓰여있고 문 안쪽에 해탈문 편액이 걸려있다.

[해탈문 오르는 길목에 보수하고 있는 국수당 건물이...]

[해탈문에서 삐끔히 보이는 구광루의 웅장함이...]

[좌측으로 종각과 뒤로 청화당, 경묵당 그리고 경학원도 보이고...]

[해탈문을 나와 정면을 보면 구광루(九光樓)가 웅장한 모습으로...]

구광루(九光樓) 해인사의 모든 건물 가운데에서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구광루라는 이름은 화엄경의 내용에서 따온 것인데, 화엄경" 에는 부처님께서 아홉 곳에서 설법하시면서 그 때마다 설법하시기 전에 백호에서 광명을 놓으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는 노전 스님을 비롯한 큰스님들만이 법당에 출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누각은 법당에 들어갈 수 없는 일반 대중들이 모여 예불하고 설법을 듣는 곳으로서 지은 것이다. 또한 남천당 한규(翰圭, 1868~1936)대사가 쓴 편액이 걸려있다. 지금은 작은 전시관으로도 쓰이고 있다.

[우측에는 보경당이 자리하고 있고...]

[구광루의 우측계단 소맷돌의 정교한 솜씨가 아름답고...]

[구광루의 중앙계단 소맷돌 쌍용중 좌측용엔 여의주가 물려있고...]

[구광루의 좌측계단 소맷돌의 아름다움...]

[해인사 범종각에는 운판과 법고, 그리고 목어가 있고...]

[해탈문을 구광루에서 내려다 보면 해인대도장이라 쓰인 현판이...]

[해탈문 좌측옆에 보경당이 자리하고...]

[구광루 중앙계단 소맷돌 용두 우측용두는 여의주를 물고...]

[구광루 중앙계단 소맷돌인 우측용을 보면 여의주가 보이고...]

[구광루 좌우측에 쪽문이 있는데 이곳이 좌측에 있는 소림문을 지나면...]

[정면으로 대적광전, 그리고 삼층석탑과 석등이 보이고...]

[대적광전 안내문...]

[좌측으로는 궁현당이 자리하고...]

[선불장(選佛場)이라는 현판도 걸린 궁현당(窮玄堂)...]

[다정스러운 듯 석탑과 석등이 같이...]

[해인사 삼층석탑과 대적광전 그리고 공사중인 장경판전...]

[해인사 석등...]

[해인사 석등 안내문...]

[...]

[해인사 삼층석탑...]

[해인사 삼층석탑 안내문...]

[석탑위 상륜부의 보개와 보륜...]

[대적광전앞 양쪽에 세워져 있는 돌기둥...]

[대적광전 오르는 계단이 이렇게...]

[명안문이란 현판이 걸린 구광루의 모습...]

[궁현당 처마 선의 아름다움...]

[심검당이라는 현판도 걸려있는 관음전...]

[대적광전에서 내려다본 삼층석탑과 구광루의 모습...]

[대적광전 철조 관음보살과 중앙에 목조 문수보살, 우측 목조비로자나불...]

[대적광전 본존 비로자나불상, 좌측엔 목조비로자나불, 우측엔 목조지장보살...]

대적광전 본존 비로자나불상은 1769년에 조성되었고, 그 왼쪽에 있는 또 하나의 목조 비로자나불상은 가운데의 본존불을 모시기 전까지의 본존불이다. 이 목조 비로자나불상은 그 좌우의 보현보살상, 문수보살상과 더불어 삼존불로서, 고려시대에 가지가 셋인 큰 은행나무 한 그루를 가지고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 삼존불은 처음에는 경상북도에 있는 금당사(金塘寺)에 모셨다가,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가야산의 용기사(龍起寺)를 거쳐, 1897년 지금처럼 그 밖의 불상들은 정확한 조성 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은데, 모두 조선시대 후기에 봉안한 것이다.

[대적광전 좌측엔 목조 지장보살, 중앙엔 목조 보현보살 우측엔 철조 법기보살...]

[대적광전 동쪽에 걸린 금강계단(金剛戒壇)현판...]

다른 사찰도 마찬가지 이지만 대적광전은 마하비로자나불을 봉안한 불전으로 대광명전, 대적전, 비로전, 화엄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대적광전의 적광(寂光)은 번뇌를 끊고 적정(寂靜)한 자리에서 발하는 진지광명(眞智光明)을 의미한다. 대적광전은 때로 광(光)자를 뺀 대적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대적(大寂)이란 여래가 일체의 산란한 마음을 여의고 드는 선정을 의미한다. 그리고 비로자나불을 모셨으나 주불전이 아닌 경우에는 그냥 비로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때로 화엄전으로 칭하기도 하는 것은 비로자나불이 화엄장세계의 교주이기 때문이다. 이제 대장경이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끝>-



덧글

  • 백팔번뇌 2007/08/20 14:06 #

    4년전 여름에 비가 억수로 내릴때 찿아서 서두르느라
    얼렁뚱땅 돌아보고 말았던 아쉬움이 있는 해인삽니다.

    헹님덕에 편히 앉아서 귀경 잘 했습니다.
  • 도시애들 2007/08/21 01:43 #

    비오는날 절집찾는게
    우리의 법칙인데..
    그래야 정말 좋은 구경..
    사람이 비가오면
    마음이 차분해 지기에..
  • 아짐 2007/08/20 14:54 #

    해인사도 참 웅장하군요.
    땅에 그려진 미로 같은건 무슨 뜻일까요?
  • 도시애들 2007/08/21 01:45 #

    해인사 말사가 몇백개 되더만요..
    건물 규모나 웅장함이 압권이죠
    해마다 한번씩 갈수 있다면..ㅋㅋㅋ
    땅에 그린 미로는 그 미로를 따라
    돌면서 종이에 적어진 경을 읽어가며
    도는 미로 입니다.
  • 碧泉(벽천) 2007/08/21 13:41 #

    구광루 중앙계단 소맷돌인 우측용이 물고 있는 저 여의주 혹시 D-WAR 에서 물고 온 것 아닌가요?
    아무리 봐도 영화에서 본 것 같은데...
    아님 좌측용이 물고 있던 여의주를 D-WAR 에서 빼앗아 간 것일까요?
    둘 중에 하나겠지요?
    잠시 웃고 갑시다.
    ^_^

    덕분에 문화재 감상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도시애들 2007/08/22 04:21 #

    아마 심형래 감독이
    해인사엘 갔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착안을 한..ㅎㅎㅎㅎ
    계단이 길었으면 용도 길어져서
    더욱 멋지게 되었을 터인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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