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_전남 고흥군 점암면 능가사에 가면.... by 도시애들


고흥으로 내려가는 15번 도로는 요즘 직선화 되어있는 지방도들이 다 그렇듯이 거의 고속도로나 마찬가지로 인터체인지화 되어있어 신호등 까지 없기 때문에 제속도로만 내려가도 주위를 살필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른 길이다. 송광사에서 벌교를 지나 남양면을 넘어 과역면을 우회도로로 가다가 석봉 교차로에서 밑으로 내려서 급하게 위험한 좌회전을 해야 갈 수 있다. 천천히 좌우를 살피고 좌회전해야 할 것을 당부한다. 이곳에서 약 2.5키로정도 가면 자그마한 점암면 소재지를 만나게 된다. 다시 약 3.5키로 정도 가면 능가사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입구에서 우회전 하면 바로 커다란 소나무가 있는 그리 넓지 않은 주차장에 도착을 하게 된다. 능가사(楞伽寺)는 행정구역상 고흥군 점암면 성기리 371-1로 점암면 성기리 팔영산(八影山) 아래에 위치한 유서 있는 사찰이다. 경내에는 위엄을 느낄 수 있는 사천왕상과 범종이 있어 유서 깊음을 증명한다. 능가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신라 때인 416년(눌지 왕 원년)에 아도(阿道)가 창건하여 보현사(普賢寺)라 했다고 하지만 지리적으로 보아 아도 화상이 과연 창건 자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

[능가사입구 주차장은 자그마 하지만 쉼터같은 느낌이 드는곳...]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탄 뒤 1644년(인조 22)에 벽천(碧川)이 중창하고 능가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뒤 1768년(영조 44)과 1863년(철종 14)에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서 정면 5칸, 측면 3칸에 팔작 지붕을 한 능가사대웅전(보물 1307)과 천왕문(天王門), 응진전, 요사채 등이 있다. 주차장에 차를 대놓으며 뜨거운 햇볕을 피해 보려고 방향을 바꾸며 한 바퀴를 돌아보았지만 정오가 다 된 시각이라 해는 머리 위에 있어 앞창으로 따갑게 쳐들어 오고 있어 그냥 편한 곳에 대놓고 카메라를 메고 좁지만 운치있고 또 가까운 거리에 있는 능가사로 향한다.

[주차장에서 몇걸음이면 천왕문을 만날 수 있어...]

능가사 천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에 맞배지붕을 올린 문으로 어칸은 통로로 사용하고 양 협칸에는 사천왕상을 모시고 있다. 막돌초석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그 위의 외부로 2출목(二出目)을 둔 익공식(翼工式)의 공포를 짜 올렸다. 능가사 사적비에 의하면, '천왕문 화주 시한 별좌 회익 왕상화주 천일 중인 삼보화주 지웅(天王門化主是閑別座懷益王像化主天日仲印三輦化主智雄)'이라하여 천왕문을 지을 때 사천왕상도 함께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항상 궁금해 왔던 방향과 또 천왕의 이름들 이번기회에 확실하게 공부를 해보기로 한다.

대웅전을 향해서 들어서는 쪽에는 보아 향좌측에서부터 北方, 西方이고 향우측이 東方, 南方이다. 1995년 8월초, 천왕문을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초창연대는 1666년(현종 7)이며, 중창은 1824년(순조 24), 3창은 일제 강점기인 1931년, 세 번에 걸쳐 보수 중창하였음이 확인되었다. 더구나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는 것은 1690년(숙종 16)에 세운 "능가사 사적비"에 천왕문과 사천왕상에 대한 시주자 명단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 비문(사적비 후면 음기(陰記) 사찰 시주자 명단편에 기록)의 일부를 보면,

[능가사 천왕문...]

『天王門 化主 是閑 別座 懷益 王像(天王像) 化主 天日 沖印(천왕문 화주 시한 별좌 회익 왕상(천왕상) 화주 천일 충인)』이라 하였다. 위 내용에 의하면 천왕문 건립과 사천왕상 조성이 동시에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적비의 기록대로라면 천왕문의 상량문에서 밝혀주고 있듯이 최초 초창연대가 1666년(현종 7)이므로 천왕상 역시 이때 동시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천왕상에 대한 양식은 우선 입구 우측을 보면 동방지국천(東方持國天)이 배치되었다. 그 다음이 남방증장천(南方增長天)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들 배치내용을 보면

동방지국천이 북쪽이고 남방증장천이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이 배치 방법이 종래의 배치방법과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외모를 보면 머리 뒤의 보관이 다른 예와는 달리 화려한 연화문이 그려진 원통형의 관을 쓰고 있다, 얼굴은 험상궂은 표정이며 왕방울 눈과 주먹처럼 생긴 멍석코 등이 괴량감을 주고 있다. 머리 뒤에는 화염문이 빈약하게 묘사되었으며 손에는 비파를 들고 있다. 자세는 반듯이 서 있는 입상이 아니고 의자에 걸터 앉은 자세이나 엉거주춤한 모습이다. 남방증장천 역시 앞의 지국천과 동일한 수법이다.

[남방의 증장천왕은 보검을 동방의 지국천왕은 비파를...]

다만 손에 칼을 쥐고 있는 것이 다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천왕 발밑에 악귀(惡鬼)같은 괴물을 딛고 있는 것이 통례인데 여기서는 입구 우측에 있는 동방지국천만이 발 아래에 어린 동녀(童女) 기생이 지국천의 왼쪽 다리를 떠받치고 있다. 입구 좌측의 북방다문천(北方多問天)과 서방광목천(西方廣目天) 역시 머리에 쓴 보관이나 갑옷의 양식은 앞의 천왕상과 동일 기법이다. 손에 들고 있는 지물은 북방다문천은 긴창을 들고 있고 서방다문천은 오른손에 뱀을 움켜쥐고 있다. 자세는 완전하게 직립한 것이 아니고 뒤에 의자를 놓고 엉거주춤하게

걸터앉은 자세이다. 발 아래에는 악귀형의 괴물이 없다. 우리나라의 사천왕상은 예외없이 무장형(武將形)으로 나타나고 있다. 더구나 손에 들고 있는 지물도 다양하다. 통일신라말에는 고려초까지의 지물을 보면 동방 지국천은 칼이나 창, 남방중장천은 칼이나 금강저 또는 보주, 서방광목천은 칼이나 금강저, 북방다문천은 보탑이나 창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은 조선조 후기가 되면서 크게 달라지고 있다. 즉 동방천은 칼, 남방천은 뱀이나 보주, 서방천은 보탑이나 창, 북방천은 비파를 잡고 있다. 이러한 도상은 중국의 원이나 청나라를 통해

[북방의 다문천왕은 창과 보탑을 서방의 광목천왕은 용과 여의주를...]

들어온 라마교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티베트계의 사천왕은 지국천이 비파, 중장천은 칼, 광목천이 새끼줄이나 뱀, 다문천은 족제비 또는 보탑을 들고 있다. 능가사의 사천왕상 중 동방지국천이 비파, 남방증장천이 칼을 쥐고 있고, 서방광목천이 뱀을 쥐고 있는 것을 보면 청나라를 통한 라마교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결과물이 아닌가 한다. 이같은 추정은 보관에서 보여준 원통형이 외모에서도 가능케 해준다. 이상과 같은 능가사 사천왕상의 라마교 영향은 고흥군의 지리적 여건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즉 남해안에 인접한 지역으로서 중국과의 무역을 생각할 수 있으며 또는 가까운 곳에 있는 운대리 청자도요지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능가사 사천왕상은 이미 문화재로 지정된 보림사 사천왕상 및 불갑사 사천왕상의 외모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음이 주목된다. 또한 조성연대(1666년)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예로서 우리나라 사천왕상 연구에 귀중한 사례가 되고 있다.

[능가사 강희명 동종각...]

종신에「康熙三十七年戊寅三月日 興陽八影山楞伽寺…」의 주종명이 있어 1698년( 숙종24)에 만들어진 범종임을 알 수 있다. 용뉴는 쌍용으로 정상에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음통은 없으며, 천판은 이중의 연화문을 표현하였다. 상단은 16엽 연화문이고 하단은 입상화문이다. 상대에 원형으로 자리를 마련해 12자의 범자문을 차례로 돌렸다. 인동문을 장식한 유곽(27×34㎝) 안에 9개의 유두를 표현하고 있다. 4곳의 유곽사이에는 천의를 걸친 보살입상과 문호형 장식을 보였는데 그 안에「主上展下壽萬歲」라는 문구가 양각되었다. 종신의 중앙부에는 주역에서 나타나는 전양인 乾(≡)에서 전음인 坤(≡≡)에 이르기까지 팔괘를 양각으로 둘렀는 바 이는 조선 범종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라 하겠다.

[능가사 강희 37년 명 동종...]

이러한 예는 같은 경내의 능가사 사적비 이수에서도 표현되고 있어 주목된다. 하대로 내려와서는 두 줄의 띠를 둘렀고 그 안에 화판과 당초문대를 돌렸다. 특히 화판은 각각 그 문양을 조금씩 다르게 표현하여 정교함을 엿볼 수 있다. 종신 중앙의 주종명은 음각인데 이에 따르면 시주자는 통정상운(通政尙云)등 68人이며 工匠, 助役, 緣化秩, 別座, 都監, 三綱 등을 밝히고 있다. 당시 주지는 도학(道學)이다. 한편 경내의 능가사사적비 음기에는 「金鐘化主雙海 重鑄別座順侃 都監前僧統義軒」으로 적고 있어 비가 세워질 무렵(1690년) 이미 주종을 한 뒤 10여년 뒤(1698년)에 다시 주종기를 음각한 것으로 보인다.

[능가사 강희명 동종...]

[종각옆 꽃밭에 핀 카네이션 - 엄니께 드려야 하는데...]

[능가사 경내의 동백나무엔 아직도 꽃이...]

[동백나무 아래 떨어져 있는 동백꽃...]

[능가사 동백은 아직도 싱싱하게...]

[종각 불사가 이루어 져야 자리할 종...]

[능가사 대웅전엔 주련이 눈에 확 뜨이고...]

능가사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에 팔작지붕의 단층 건물로 비교적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약한 배흘림의 두리기둥위에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걸고 짜올렸으며, 공포는 내4출목(內四出目), 외3출목(外三出目)의 다포양식으로 되어 있다. 주간포는 어칸에 3구, 협칸에 2구, 퇴칸에 1구씩 놓여 있다. 첨차는 교두형이고 쇠서(牛舌)는 앙서형으로 뾰족하게 처리하였다. 천장은 종량 위로만 우물천장을 가설하였고 바닥은 우물마루가 깔려 있다. 창호는 어칸은 4분합의 빗살문, 협칸은 쌍여닫이, 퇴문은 외여닫이문으로 처리하였다.

[대웅전앞의 좌측 당간지주...]

[대웅전앞의 우측 당간지주...]

[능가사 대웅전 내부...]

[능가사 대웅전 목조삼체불...]

높직한 수미단을 마련하여 봉안된 불상으로 목조에 개금을 하였다. 삼체불 중 본존불은 나발의 머리에는 조그마한 원형 육계가 보인다. 눈은 정면을 응시하고 원만한 상호(相好)이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보이며,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어깨선을 타고 내려온 옷주름이 두껍게 나타난다. 가슴은 양연형의 내의자락이 표현되어 있고 그 아래로 띠매듭을 둘렀다. 수인(手印)은 항마촉지인을 맺고 있다. 무릎은 오른발이 올라가는 길상좌(吉相坐)이며, 하체 정면에서 흘러내린 옷주름이 유려하게 무릎 전체를 덮고 있다.

좌우에서 협시를 이루며 서있는 보살은 문수와 보현으로 추정되는데 , 도난 당하여 다시 조성한 불상이다. 예전의 보살입상은 3체불과 수인만 다를뿐 비슷한 양식이었다. 중앙의 본존불 왼쪽에 모셔져 있는 불좌상은 아미타의 중품하생인(中品下生印)을 결한 당당한 모습의 불상으로 목조에 개금을 하였다. 뒤에는 화려한 색채로 그려져있는 후불탱이 걸려 봉안되어 있다. 삼체불의 오른쪽(향좌)에 모셔져있는 불좌상은 목조상에 개금을 하였다. 단 위에 결가부좌하여 아미타의 중품하생인(中品下生印)을 결하고 있다. 뒤에는 화려한 색채로 그려진 거대한 후불탱이 걸려 봉안되어 있다.

[본존불 왼쪽에 모셔져 있는 불좌상으로 아미타의 중품하생인...]

[후불탱 사이에 모셔진 ...]

[능가사 대웅전 불단 - 본존불...]

높직한 수미단을 마련하여 봉안된 불상으로 목조에 개금을 하였다. 삼체불 중 본존불로 나발의 머리에는 조그마한 원형 육계가 보인다. 눈은 정면을 응시하고 원만한 상호(相好)이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보이며,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어깨선을 타고 내려온 옷주름이 두껍게 나타난다. 가슴은 양연형의 내의자락이 표현되어 있고 그 아래로 띠매듭을 둘렀다. 수인(手印)은 항마촉지인을 맺고 있다. 무릎은 오른발이 올라가는 길상좌(吉相坐)이며, 하체 정면에서 흘러내린 옷주름이 유려하게 무릎 전체를 덮고 있다. 좌우에서 협시를 이루며 서있는 보살은 문수와 보현으로 추정되는데 , 도난 당하여 다시 조성한 불상이다. 예전의 보살입상은 3체불과 수인만 다를뿐 비슷한 양식이었다.

[우측 후불탱 사이에 모셔진...]

[오른쪽에 모셔져있는 불좌상, 목조상에 개금을 하고, 단 위에 결가부좌하여 아미타의 중품하생인...]

[능가사 대웅전 천장...]

천장은 층단천장으로 되어 있는 우물천장이다.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창호의 무늬는 빗살무늬문을 하고 있다. 또한 특이한 것은 건물 방향이 입구 때문에 북향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후기의 건물이지만 규모나 양식면에서 귀중한 유산이라 하겠다. 건물 전체가 기울어 1999년부터 완전 해체 하여 2000년 12월 완전 복원하여 본래의 모습을 찾았다.

[능가사 대웅전 종...]

능가사 종은 단용뉴를 갖추고 있으며, 음통이 있다. 상대는 당초문으로 장식되었으며, 천판에는 시주자들이 이름이 양각되어 있다. 상대 아래에는 4개소에 유곽이 표현되었고, 종복에는 시주자 들이 이름이 양각되었다. 당좌를 갖추고 있으며, 하대도 상대와 마찬가지로 당초문을 장식하고 있다. 종복에는‘능가가 주지 남법선 화주주천진행’이란 글자가 양각되어 있다.

[능가사 대웅전 칠성탱...]

하늘의 별인 북두칠성은 하늘의 일월성진(日月星辰)을 다스리고 천재지변을 통솔하는 주제신(主帝神)으로 승격하게 된다. 신으로 숭배되어 온 민간신앙을 흡수하여 부처님으로 승격시키고 칠성의 주존을 치성광여래로 모시며 그림으로 도상화한 것이 칠성탱(七星幀)이다. 화면의 중앙에는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앞에는 해와 달을 들고 있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협시를 이루고 있다. 그 좌우로 도교적인 복장을 한 칠원성군과 머리가 높게 솟아 있는 필성(弼星)이 정연하게 배치되어 그려져 있다. 능가사 대웅전의 향우측 벽에 걸린 칠성탱화이다. 이 탱화는 화기에 따르면 1902년(대한광무8)에 순천 송광사 삼일암에서 조성하여 장경각에 봉안했던 것이다. 그 뒤 현 위치로 옮겨졌다.

[능가사 대웅전 신중탱...]

대웅전 내 향좌측 벽에 신중탱이 봉안되어 있는데, 불법을 수호하는 여러 선신(善神)을 도상화한 그림을 신중탱이라 한다. 많은 신들을 배치하여 그리므로 다양하고 복잡한 구도를 보이는 신중탱은 일반적으로 제석(帝釋)과 위태천을 중심으로 주위에는 무장을 한 신중들을 배치한다.

[능가사 원음료...]

[능가사 대웅전의 측면...]

[좌측에 능가사 요사와 정면엔 응진당이...]

[능가사 응진당...]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의 단층건물이다. 원통형 두리기둥의 위에 외부로 2출목(二出目)을 둔 삼익공식의 공포를 짜고, 종량 위로 우물천장을 가설하였고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다. 창호는 띠살창으로 짜아 어칸은 4분합, 협칸은 2분합의 문을 달아 놓았다. 안에는 수기삼존상과 나한상이 함께 모셔져 있다. 각가 기둥의 주련은 다음과 같다. 住世恒爲眞福田 親承布師口丁口寧囑 三明六通悉具足 四向四果早圓成

[능가사 응진당 좌측에 모셔진 능가사 산신탱...]

민간에서 외경시 되어오던 호랑이를 산의 신령(神靈)으로 존경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던 호랑이신앙을 불교화하면서 산신(山神)으로 승격시켜 수용하여 그린 것을 산신탱이라 한다. 붉은 옷을 입고있는 산신은 부드러운 미소로 인자하게 그려져 있는데, 옆구리에는 항상 따라다니는 호랑이가 해학스럽게 그려져 있다. 주위에는 동자가 작게 그려져 있고 뒤에는 자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능가사 응진당 목조삼존불...]

능가사 응진당내에 있는 목조 삼존불로 재료는 나무이지만 개금을 하였다. 양식을 보면 본존불은 나발의 머리에 조그마한 육계가 보이며 계주도 나타난다. 얼굴은 방형에 가까워 인후한 느낌을 주며 백호가 표현되었고 상호는 원만상이다.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었고 법의는 통견이다. 내의는 연화형으로 표현해 법의와 구분하였고 띠매듭을 둘렀다. 무릎은 결가부좌로 오른발이 왼쪽 무릎위로 올라가는 길상좌를 취하였다.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다. 무릎 밑으로 내려쳐지는 의습이 사실성을 띠고 있으나 너무 주름을 많이 주어 칙칙한 느낌이다. 보살상은 양식이 비슷한데 아직 피지않은 연꽃을 양손에 맞바꿔 잡고 있다. 화염무늬가 표현된 보관, ▶▷≫

[능가사 응진당 나한상 좌측...]

법의는 통견, 목에는 삼도가 보이며 띠매듭이나 연화형 내의자락 처리는 본존불과 유사하다. 이 3존불은 어깨를 걸친 통견의 의문이나 그 양식이 대웅전에 봉안된 3체불과 동일 수법임을 알 수 있다. 이 응진당은 바로 인접한「능가사 사적비(1690년)」에 따르면 17세기후반 중창할 때 동시에 지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 불상 역시 아마 법당을 중창할 때 함께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사적비의 음기에「應眞堂 佛像十六羅漢化主 尙機 別座 萬幸」이라 하여 불상 조성 당시의 화주와 별좌를 밝히고 있다. 즉 조성의 연대를 비교적 정확히 알 수 있는 불상이다. 그렇다면 현전하는 응진당내의 나한상이 바로 이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 거의 틀림없을 것 같다.

[능가사 응진당 나한상 우측...]

사적비 음기에 따르면 '응진당불상 16나한 화주 상기 별좌 만신(應眞堂佛像十六羅漢化主尙機別座辛)'이라하여 불상과 16나한을 조성한 화주와 별좌를 밝히고 있다. 조성년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이 나한상은 밝고 맑은 표정이며 호랑이 등 산짐승과 날짐승을 아우르는 활달하고 힘찬 조각솜씨가 돋보이는 걸작이다. 16나한은 재상의 아들이며 바루를 들고 있는 빈도라바라다바자, 선악을 구별 능력이 있는 가나가바차, 전생의 기억을 아는 가나가바라타자, 수빈타, 등을 긁고있는 나쿠라, 참선하는 바다라, 철바루를 들고 있는 카리카, 바자라푸트라, 중생교화에 힘쓴 지바카, 판타카, 라후라, 나가세나, 경전을 읽고 있는 안가다, 바나바시, 아지타, 수다판타카이다. 이 분들은 석가여래가 열반한 이후에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열반에 들지 않고 이 세상에 있으면서 불법을 수호하도록 위임받은 분들이다.

[응진당옆 8각 원당형 부도...]

능가사 경내에서 100m쯤 떨어진 응진당 옆에 위치한 8각원당형의 부도이다. 일부 도괴우려 부분이 있어 한쪽에 시멘트 기둥을 받쳐 놓았다. 각 부분의 화문이나 각종 동물문양이 새겨진 흥미로운 부도이다. 양식을 보면 방형의 대좌를 마련하였는데 그 네 귀퉁이에 동물형상을 양각하였다. 그러나 마모가 심하여 그 동물이 어떤 형상인지 분칸키 어렵다. 대좌위로 8각의 받침을 놓았는데 4면에는 화문이 표현되었다. 이 화문은 꽃이 피어나는 과정을 묘사한 것인데 동쪽면은 이제 막 피어 나려고 하는 꽃잎을 머금은 모습이다. 이러한 순서는 북서남쪽으로 돌아가면서 점차 꽃잎이 만개해 가고 있다. ▶▷≫

[응진당옆 8각 원당형 부도옆의 떨어진 부분...]

그 사이의 각 면에는 동물 형상을 조각하였는데 남쪽의 두면은 용두, 북쪽은 코끼리와 사자상으로 보인다. 서쪽에는 대좌와 옥개석 사이에 사각의 시멘트 기둥을 받쳐 놓았다. 앙련은 8엽 중판이며 상면에 받침을 마련하여 탑신을 받고 있다. 8각 탑신은 별다른 조식이 없다. 옥개석은 귀꽃에 동물형상을 표현하였고 우동과 그 사이로 완만한 경사를 이룬 기왓골이 보인다. 하면은 2중 부연으로 표현되었다. 그 위로는 노반 없이 연화형의 상륜부가 놓여 있는데 옥개석이나 탑신, 기단부와 동일부재인지는 분간키 어렵다. 이 부도는 각종 동물문양이 표현되고 있어 주목되나 부식이 심하여 곳곳에 시멘트로 후보한 흔적이 보인다. 조성연대는 조선시대 후기로 추정된다.

[만경암 중수비...]

능가사 경내의 대웅전 앞에 있는 부도군과 함께 있는 호패형의 석비이다. 장방향 좌대에 비신을 놓았는데 전면 상단에 횡서로 만경암중수기념비(萬景庵重修紀念碑)라 음각되었고 비문은 9행이다. 음기도 있다. 이 비는 1918년(대정 7)에 세워 비교적 연대가 떨어지지만 고흥에서 유일한 암자의 중수비라는 점에서 원문을 전재한다. 萬景庵重修紀念碑 全羅南道高興郡占巖面八影山楞伽寺 八角有庵奧自羅麗 念金佛往在庚子善男○緣戊申厄會 法侶所居歷年千餘鍾鳴木魚劫灰空墟重修複初靈光巍然 香卓烟敬僉議大同棟梁永安爲刻石面 蓮坮雨寒仍舊修玆溪山增輝昭示後來 過驛里出張所長大保又吉本郡守崔承七 大本山順天郡松廣寺住持李雪月 施主秩 代書人 片岡良平 光州郡守 金相泰郡 參事金鏞泰 本寺秩 通譯員金○瑞 ○○宋哲浩 申徹○○住持 朴錦晟 池光○○○智著述人金相喜 金同年 <음기> 監役員 愼寶潭 募集員 孫順敏 林孝順 金泰允 金永玄 金東煥 信女 朴雲娥 大正七年戊午一月 日 立碑

[능가사 사적비 정면...]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0호로 1978. 9. 22에 지정된 이 사적비는 능가사 경내의 대웅전에서 뒤편으로 100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바로 앞에 응진당이 있다. 방형에 가까운 자연석 좌대 위에 귀부를 올리고 그 위로 비신과 이수를 갖춘 완형의 비이다. 이 비는 비신 전면 상단에 전서체의 횡서로 「興陽八影山楞伽寺事蹟碑」라 쓰고 비명은 「朝鮮國全羅道興陽縣八影山楞伽寺事蹟碑銘幷序」이다. 전면은 모두 19행으로 1행 63자인데 행서체로 홍문관부제학 오수채가 짓고 사헌부대사헌 조명교(1687~1753)가 전서와 함께 비문도 썼다. ▶▷≫

[능가사 사적비 우측면...]

말미의 「崇禎紀元後再庚午 月 日立」이라는 명문으로 보아 1690년(숙종 16)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비문에 따르면 릉가사는 원래 보현사란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하였으나 지리지류에는 별개의 사찰로 각각 기록되고 있다. 초창연대는 신라 눌지왕 3년(419년, 東晋 의희13) 아도화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 신빙성에는 의문이 간다. 이 시기와 관련된 유물이 발견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 스님인 아도화상의 생존연대(3세기)와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정유재란으로 화재를 당해 폐찰이 되었다 한다. ▶▷≫

[능가사 사적비 비신위의 이수...]

1644년(인조 22, 숭정 갑신)에 정현대사(正弦大師)가 하안거(夏安居)를 하다가 신승견몽(神僧見夢)으로 광희사(廣熙師)와 함께 산의 남쪽에 옛 절터를 발견하여 전각·요사채·불상·탱화·종각·목어각 등 불사를 하면서 능가사를 중창하였다. 정현대사(正弦大師)의 뒤를 이어 그의 제자들인 민정·의헌·상기 등이 스승의 유지를 따라 문·요사채를 세우고 단청불사를 하여 사찰면모를 일신하였다. 중창 불사가 이루어 지자 1699년 봄 사승 수명(秀明)이 오수채(吳遂采)에게 글지어 줄 것을 청하여 그 이듬해 즉 1690년에 비를 건립하였다.

[능가사 사적비 귀두 위에 비신이...]

[능가사 사적비 귀두의 모양...]

[대웅전 뒤쪽엔 커다란 보호수가...]

[능가사 감로수터...]

[맷돌 위에도 돌정성이...]

[능가사 대웅전을 뒤에서 보면...]

[새로 지은 요사엔 송월료(送月寮)라는 편액이...]

[대웅전 처마...]

[대웅전 처마밑의 용두...]

[대웅전에서 본 천왕문...]

[대웅전 처마에 걸린 팔영산...]

[능가사 대웅전...]

[능가사 연못아 입석엔 즉심시불(즉心是佛)이란 글이...]

[요사와 팔영산...]

[함박꽃과 응진당 그리고 좌측엔 요사...]

[편안해 보이는 능가사 연못...]

[원응료 선원 뒤로 팔영산이...]

[대웅전과 원응료 사이로 팔영산이...]

[능가사 사영당 부도...]

능가사 경외 400m지점에 추계당부도와 함께 있다. 이 부도의 조성연대는 오래지 않으나 기단부의 동물(용)조식이나 8각하대석의 화문등, 특이한 옥개석 형태를 하고 있다. 자연석 돌을 쌓아 30~50㎝ 높이로 담장(230× 185㎝)울 둘러 부도의 구역을 설정하고 있다. 하부가 전부 드러나지 않아 지대석유무는 확인할 수 없고 복연대좌를 마련하였다. 8엽의 복연이 있는 이 대좌는 동일석으로 네 귀면에 용두를 조식하여 밖으로 향하고 있다. 이들 용두는 각각 그 조각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복련 위로 8각의 하대석을 올렸는데 8면에 각각 화문이 조식되었는데 그 문양이 전부 다르다. 고복형의 탑신은 별다른 조식이 없으며 전면 중앙에 사영당(泗影堂)이란 탑호를 음각해 두어 주인공을 알 수 있게 해준다. 4각의 옥개석은 하면은 수평이며 별다른 조식이 없다. 약간 반전을 보이며 상면은 연주형 문양으로 장식하였고 우진각형태의 지붕을 연상케 한다. 상면은 연꽃잎이 말아져 올라가는 듯한 조식을 추가했다. 상륜부는 옥개석과 1석으로 노반대신 복연을 조식하고 그 위로 연주문을 돌린 뒤 보주로 마감했다. 조성연대는 조선후기로 추정된다.

[능가사 추계당 부도...]

능가사 경외 남쪽 400m지점에 있는데 팔영산을 오르는 길목의 부도전에 위치한다. 전형적인 석종형의 부도로서 기단부는 확인할 수 없고 주변에 자연석을 쌓아 놓았다. 두툼한 2조의 양각선을 돌려 하대를 표현하였는데 중앙에 게(蟹)를 음각으로 조식한 점이 주목된다. 종신부에는 4면에 유곽(38× 30㎝)을 마련하고 유두를 조출하였다. 전면 중앙에는 장방형의 액자형을 구획하여 추계당(秋溪堂)이란 탑호를 음각으로 새겼다. 상대 역시 2조의 띠를 양각으로 조식하였다. 상륜부는 용두를 대신하였는데 사방에서 마치 하늘을 향해 오르는 네 마리의 용이 여의주룰 놓고 다투고 있는 듯이 나타내었다. 이 부도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석종형 부도로서 조성연대는 조선후기로 추정된다.

[능가사 부도전...]

[능가사 부도전 앞쪽에 추계당과 사영당 부도...]

[부도전에서 올려다 본 팔영산...]

오늘의 여행은 벌써 두 번째의 사찰여행으로 많은 시간을 소요한 것 같지만 송광사와 능가사를 점심때까지 둘러 봤다는게 의심이 갈 정도로 빠른 것 같다. 원래는 능가사에서 점심 공양을 하겠다고 12시 안에 오느라 앞만 바라보고 왔는데 조금은 실망이다. 걱정은 굶어서가 아니다. 이제 어디까지 가서 먹느냐가 문제다. 빠른 속도로 챙겨 고흥 읍내 쪽으로 달려 본다. 참고 자료 : 코리아 템플 -<끝>-



덧글

  • 가을남자 2008/05/12 02:21 #

    우째 순서가 바뀌었누...ㅋㅋ
  • 도시애들 2008/05/12 02:48 #

    긍게 왜그냐 하문
    송광사는 사진을 두파트로
    나누는 바람에..ㅋㅋㅋ
    잠깐 잠들었다 깼넴..
  • 고리아이 2008/05/12 17:07 #

    저도 5년 전에 여길 들렀지요
    많이 달라졌네요
  • 도시애들 2008/05/13 12:29 #

    종각과 요사...그리고 또 연못도
    새로 조성된것 같더군요..
    사찰 뒤쪽으로 많이 개발이 되고 있어
    휴식처와 연계로 관광코스가...
  • 서란 2008/05/13 14:36 #

    사진보고 있으려니 이곳에 마구 달려가고픈~~
    아직까지 동백꽃이 있다니 정말 보기 좋네요.
    낙화가 더 아름다운 듯한 동백보러 가고 싶어지네요.
    덕분에 고흥여행 잘했습니다.
    이쪽에 우주센터가 들어서서 요즘 뜨는 곳이죠~
  • 도시애들 2008/05/14 20:19 #

    정말 놀랬어요..
    동백이 아직도 싱싱? 하게..ㅋㅋ
    정말 싱싱함은..
    떨어져 있는 꽃잎이 하나도 상하질 않아..ㅎㅎ
  • 누리모 2008/05/15 16:05 #

    능가사에서 본 팔영산도 아름답고..
    직접 능가사에 갔었다 해도 이렇게 자세히 둘러 볼 생각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대웅전의 옆 모습 뒷 모습을 다 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냥 대웅전 안에서 절만 하고 휭~~나오기 일쑤지요
    요사와 팔영산 그림을 보고 있으니 맘이 잔잔해 지는 느낌입니다
  • 도시애들 2008/05/17 00:42 #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말씀 해주시니
    사진 올리는 일이 힘이덜들것 같은..ㅋㅋㅋ
    정말 팔영산 오르고 싶었어요..
    근데...세시간 걸린다는 바람에...
  • 산그리고나 2008/05/22 14:23 #

    몇달전에 시간관계상 눈으로 덮인 팔영산을 혼자 오르기 전에
    지나쳤던 능가사의 풍경이 정말 아름다운것같습니다
    잘 보고 다녀갑니다.
  • 도시애들 2008/05/22 15:26 #

    정말 오르고 싶은 산입니다.
    봉우리 마다 이름이 다르더군요..ㅎㅎㅎ
    능가사도 멋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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