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구간] 장수군 장계면에서 장수읍까지.... by 도시애들

19번도로[18구간] 장수군 장계면에서 장수읍까지....

[알맵지도 사용]

지난번 여행의 종착역은 장수군 계북면과 장수군 장계면의 경계지점인 집재의 휴게소겸 식당에서 끝이 났다. 이곳에서 만난 곡성의 친구 성산과 같이 여행이 시작된다. 곡성에서 이곳까지 오토바이로 달려온 관계로 이후 2대의 애마가 찬조출연 하게 되었다. 경치좋은 산허리 언덕에서 좌우로 멀리까지 내려다본 후 주위에 잘 정돈된 꽃밭에서 몇송이의 꽃을 눈에 담은 후 이번 여행의 출발을 서둘렀다. 이때의 시각이 오전 11시가 조금 넘어서 이다.

경사가 심한 언덕을 조심스럽게 내려오다보니 커다란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 성관사가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여행의 첫손님으로 미소를 짓고 있다. 이내 좌회전해 안으로 들어섰다. 약 1키로정도 들어가니 한창 공사 중인 성덕사를 만날 수 있었다. 여기저기 포크레인과 또 인부들의 바쁜 손놀림 속에 사진 찍으러 들락거리는 것조차 죄송스러워 멀리서 보이는대로 찍은 편인데 게다가 문화재청이나 장수군에도 자료가 없어 마냥 아쉽기만 하다.

이 사찰은 조계종 산하 조선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1999년에야 등록이 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부터 법등이 이어졌다고 전하며, 서용수 스님이 1943년 금덕사로 개칭하였다. 1994년 월성스님이 불사를 시작하였으며 성관사로 개칭하였다." 고 장수군청에 쓰여져 있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 길이 없다. 또한 대웅전과 삼성각만 시대의 흐름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고 다른 건물들은 요즈음 중축된 것으로 아주 깨끗이 표현되어 보기가 아름다웠다.

[성관사 일주문...]

[장계면소재 성관사 종각...]

[성관사 대웅전...]

[성관사 대각선원...]

[성관사 내 동관뒷산에 민들레 홀씨가...]

[성관사 중화당...]

[집재 쪽에서 내려다본 장계면 ...]

[장수군 장계면소재 장계초등학교 교정...]

장계초등학교는 유서가 깊은 학교이다. 1918년 5월 장계보통학교로 인가가 된 후 지금까지 84회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장계초교도 느티나무의 교목과 개나리, 까치가 교화와 교조이다. 장계초교의 학생수는 생각보다도 많다. 남녀학생 다합쳐 400명이 넘으니 요즘 면단위에서는 보기 드문 학생수를 보유하고 있어 고향을 지키는 젊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장계에서 천천면 쪽으로 개울을 따라 오르면 벽성정이 있다고 지도에 표시되어 올라봤으나 멀리 시멘트로 지은 정자가 산허리에...

다시 돌려 나와 장계면의 계내명덕천을 건너면 발로 계남면이 되고 만다. 계남면 들판을 가로지르는 진안에서 장계로는 고속화도로의 교각이 너무 날씬해 올려다보면 현기증이 날 것같은 그런 모습이다. 교각밑을 지나 계남면 소재지로 들어서면 작은 4거리에 좌측은 수열비, 우측은 흥학당이라고 밤색 표지판이 손짓을 한다. 먼저 좌회전해 수열비를 찾아 나선다.

[장계면 소재 수열비...]

수열비(樹烈碑) - 문화재자료 40호. 소재지: 전북 장수군 계남면 화음리 920수열평 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비로, 조선시대 중기의 오씨 부인이라는 여인의 절개를 기리고 있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장수지방에 침입하였던 왜적들이 집집마다 약탈을 하며 불을 지르기도 하면서 부녀자들을 겁탈하는 일이 잦았다. 화평 마을에 살고 있는 양사무의 부인 오씨부인은 아침에 들이닥친 왜적들에게 가슴을 잡히는 등 모욕을 당하게 되자, 자신의 가슴을 칼로 베어 그들의 얼굴에 뿌리면서

“짐승만도 못한 오랑캐들아! 젖이 욕심나거든 이것을 들고 네 나라로 돌아가라”며 크게 외쳤다. 부인의 위엄에 눌린 왜적들은 곧 달아나고, 피를 많이 흘린 부인은 그 자리에 쓰러져 운명하였다. 훗날 이러한 사연을 나라에 올려 아뢰니, 조정에서는 부인을 위한 비를 세우도록 명하였다. 비각안에 서 있는 비는 낮은 사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구조로, 비몸의 윗변이 둥글게 다듬어져 있다. 앞면에는 비의 이름을 길게 새기고, 뒷면에는 ‘수열평(樹烈坪)’이라 썼는데, 이 때부터 ‘화평’이라는 마을 이름도 ‘수열평’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비문은 선조의 손자인 낭선군 우의 글씨이다. 라고 문화재청에서 알려준다.

[뒤로 계남천이 흐르는 백화정의 멋스러움...]

계남천을 건너 좁은 길을 비집고 들어서면 흥학당을 알리는 표지판과 반월문이라 쓰인 흥학당의 문이 떡 하니 버티고 서있다. 이곳에서 기웃거리고 있는 우리를 보시던 마을 어르신께서 이곳의 유래를 말씀해 주신다. 옛날 각 성씨들의 유지들이 모여 학당을 지어 수많은 선인들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고 일제시대엔 계남초교의 교사로 쓰였다고 알려주신다. 그리고 이문의 이름을 보면 알 듯이 달도 차면 기울어 많고 적음을 반복하지만...반달은 그저 마음이 풍만할 따름이라고 멋진 말씀도 해주셨다.

[흥학당의 대문인 반월문(半月門)...]

[계남면 화양리소재 흥학당...]

흥학당(興學堂) - 문화재자료 147호. 소재지: 전북 장수군 계남면 화양리 97, 98-1지역 11개 성씨 대표가 모여 인재 양성을 위해 세운 서당으로, 숙종 43년(1717)에 세워 영조 31년(1755)과 고종 2년(1898)에 고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입덕문’이라는 현판이 걸린 출입문을 들어서면 흥학당이 있는데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ㅡ자형 건물이다. 가운데 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방을 구성하여 세울 당시의 평면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지역 명문학당의 기능은 사라졌으나 이 지방 미풍양속의 맥을 이어오는 계남향약 발상지로 역사적 의미가 있다. 또한 건물의 구조나 세부 기법에서도 광무 2년(1898) 고쳐 세울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전통적인 건축 기법을 엿볼 수 있다. 고 문화재 관리청에서 전해준다.

[흥학당 안에 흰 민들레가...]

[흥학당 안의 내문 입덕문(入德門)...]

입덕문이라는 현판을 걸어놓은 문을 들어서면 정면 2칸 . 측면 2칸 팔작시멘트 기와지붕으로 된 흥학당 본 건물이 있다. 이 흥학당은 조선조 선조 30년(1597) 당시 이 지방에 살고 있는 연안 유씨, 충주 박씨, 전주 최씨, 전주 박씨, 동래 정씨, 금계 한씨, 안흥 서문씨. 청주 한씨 등 11성씨가 모여 자녀교육을 위해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뒤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일제시대에는 이 건물이 계남면사무소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지금의 계남초등학교의 전신인 계남보통학교가 이 곳에서 개교하였는데, 이 때에는 학교의 교사로 이용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사학으로서는 전국적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계남면소재 계남초등학교 교정...]

계남초등학교는 1934년 5월 장안공립 보통학교로 인가 되었다 한다. 그후 1945년 광복이후 계남국민학교로 개칭되었다. 마침 점심시간이 시작된 시각이라 운동장엔 아이들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잠시 예쁘게 색칠된 교사를 보며 맛난 점심을 먹으며 떠드는 개구쟁이들을 생각해보며 발길을 돌렸다.

[장계면소재 사물정...]

장계면을 두루 둘러본 후 이제 넓은 들판은 멀어 져가고 우측에 같이 동행하던 계남천도 사라져 버리고 양쪽엔 높은 산들이 답답하게 하늘을 막고 들어서 있다. 골짜기같은 도로를 한참을 올라서니 장수관광농원이 보인다. 이곳을 지나면 싸리재이다. 옛날에는 이 싸리재가 얼마나 길고 험한지 작은 싸리재, 큰싸리 재로 구분해놓아 힘든 고개 넘이를 하였었다 한다. 이번에 싸리재를 넘어서니 못지 나가본 터널이 맞이해준다. 터널에 쓰여진 이름도 없고 신경을 못쓰고 지나 버린 터널이라 이름을 ...

[작은싸리재로 오르는 길목...]

[터널입구에 친구 성산이 에스코트?...]

[터널을 나와 내려다본 장수읍 전경...]

장수군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역으로 우평현의 관할구역에 속했으며, 통일신라 이후에는 757년<경덕왕 16년>에 군현의 명칭을 고침에 따라 우평현을 고택현으로 개칭했으며, 장수군은 고택현의 관할구역에 있었다. 940년(고려태조23년)에 고택현을 장천현으로 고쳐 부르게 됐고 현청소재지를 현 천천면 남양리 앞 덕들 평전에서 현 장수읍 선창리로 옮겼다. 근세 조선조초 1413(태종 14년)에 장천현을 장수현으로 고쳐 부르면서 현청 소재지를 선창리에서 장수리로 옮겼다.

이렇듯 장수군과 고려초 장천현 시대 이후로 우금에 이르기까지 현청의 소재지로서 모든 면에서 중심지 역활을 했다. 근세 조선말엽 이전에는 부, 군, 현내에 방을 두었으나 편의상 구역을 획정 하는데 불과했다." 고 장수군청에 알 수가 있었다. 장수읍내로 시원하게 새로이 뚫린 4차선 도로를 내려와 창계서원을 찾기 위해 내려섰는데 아직 공사가 다 끝나지 않은 길을 잘못 들어서 다시 내려와 한 바퀴 돌아서 천천면 쪽으로 가다가 삼거리에서 들어서 멀리 보이는 서원을 찾아갈 수가 있었다.

[장수읍 소재 창계서원 전경...]

창계서원(創溪書院) - 문화재자료 36호. 소재지: 전북 장수군 장수읍 선창리 566-1황희 정승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황희(1363∼1452)는 조선 전기 문신으로 성품이 어질고 청렴하며 충효가 깊어 조선왕조를 통하여 가장 명망있는 정승으로 칭송받고 있다. 조선 숙종 21년(1695)에 세운 창계서원은 고종 5년(1868)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55년에 다시 세웠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 상현재가 있는데,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서원 안에는 황희 정승을 중심으로 황수신· 강백진· 장응두 등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해마다 7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 서원은 장수군에서 가장 오래된 서원이다. 라고 문화재청에서 알려준다.

[경앙문이란 현판이 걸려있는 삼문...]

[상현재...]

장수군에서 제일 오래된 서원이라는 창계서원을 둘러본 후 다시 지도에 의해 장수고등학교 옆에 위치한 관두학당을 찾아 나섰다. 넓게 새로이 단장된 도로를 이용 장수고교를 찾아 임대아파트길로 들어서 학교입구에서 아무리 찾아다녀도 보이질 않았다. 미리 자료를 살펴보질 않은 상태라 모를 수밖에... 할 수 없이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자세히 아는 학생들이 없었다. 다만 장수고등학교 강당? 으로 쓰이는 것 같은 커다란 건물이 관두학당 일 것이라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장수군 장수읍소재 장수초등학교 교정...]

장수는 금강의 발원지이며 산이 높고 물이 항상 많은 그런 곳이라며 소개가 시작되는 장수초등학교는 1912년 5월 장수공립 보통학교로 시작되었다. 지금은 장수서초교, 그리고 덕산초교와 통합하여 355명의 학생들과 35명의 선생님들이 호흡을 같이하는 새건물의 주인이 되었다. 올해 92회의 졸업생을 배출했다니 아마 19번도로가의 학교 중 제일 오래된 학교인 것 같다. 이학교의 교목은 은행나무이다. 오래만에 느티나무를 벗어난 셈이다. 교화는 철쭉, 교조는 비둘기이다. 교훈은 바르게! 알차게! 굳세게!....

[장수읍소재 장수향교 홍살문...]

장수향교(長水鄕校) - 장수향교는 조선 태종 7년(1407)에 덕행이 훌륭한 사람들을 모셔 제사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을 위해 나라에서 세운 지방교육기관이다. 조선 태종 때엔 선창리에 건립되었던 것을 35년 후인 세종23년 (1441년) 현 위치로 옮겨 세워 현재까지 창건 당시의 건물 양식대로 보존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로서 건물의 구조가 다포형이라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왜군이 정유재란때 남원성을 침공하고 북상 중 장수 향교를 불태 우려하자 향교 지기 정경손은,

「 이 곳은 성전이니 누구도 침범할 수 없다. 침범하려거든 나를 죽이고 가라 」 라고 목숨을 걸고 항거하였다. 이 의기에 감복한 왜군이 오히려 「 이 곳은 성전이니 침범하지 말라 」라는 신표를 써주어 장수 향교를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매년 음력 3월 15일 그의 얼을 기리는 제례를 지니고 있다. 고 장수군에서 알려준다.

[장수향교 삼문과 정충복비...]

정충복비(丁忠僕碑) - 지방문화재자료 제 38호, 소재지: 장수읍 장수리 203-1. "정유왜란 때 왜적장 소한천륭경의 한 부대가 육십령을 넘어 장수로 침입하였다. 당시 향교를 지키고 있던 정경손은 왜적들이 향교 앞에 이르러 향교 안에 들어오려하자 대문을 굳게 닫은 채 마당 가운데 꿇어 앉아 경서를 읽으면서 왜적들을 향하여 말하기를 '내목을 먼저 배고 들어가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왜적들은 정경손의 당당한 기개에 감복되어 '물범성역'이라는 쪽지를 써서 대문에 붙이고 물러갔다.

그 뒤 왜적의 후속 부대들이 이 곳에 와서 이쪽지의 내용을 보고 향교에 들어가지 않고 되돌아 갔다고 한다. 그리하여 임진왜란 때 우리 나라 향교가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장수향교만이 정경손의 기개와 지락으로 소실되지 않고 지금까지 보존될 수 있었다. 이러한 정경손의 투철한 책임감과 향교를 지킨 의행을 기리기 위해 헌종 12년(1846) 3월 장수현감 정주석이 이 비를 세웠다. 이 비석의 전면에는 "호성충복정경손수명비"라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다. 이 비석은 장수향교 입구 우측에 정면 1칸.측면 1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보호각 안에 있다. 고 장수군청에서 알아볼 수 있다.

[장수향교 충효당...]

[장수향교 삼문 부강문(扶綱門)...]

[장수향교 명륜당...]

[장수향교 사마재...]

[대성전 출입구인 내삼문...]

[장수향교 진덕재...]

[장수향교 경성재...]

[장수향교 대성전...]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여러 성현께 제사 지내기 위한 공간으로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 지붕이며, 건물의 크기는 별로 크지 않고 앞면 가운데에는 여닫이 문을 달았다. 오른쪽과 왼쪽 칸에도 같은 형식의 문짝 1개씩을 달았는데 그 옆에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창을 달았다. 지붕 처마를 받치고 있는 장식구조의 겉모양을 화려하게 꾸몄는데, 이러한 장식은 조선 중기 이후 건축의 특징적인 요소이다. 장수 향교는 임진왜란 때에도 잘 보존되어 조선 전기 향교의 형태를 잘 알 수 있다. 이곳에서 보관하고 있는 서적은 지방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특히 대성전은 조선시대 향교 건축의 대표 건물 중 하나이다.

[장수향교안의 오래된 비석들...]

이번 구간의 거리는 몇키로 안되는 거리의 여행기가 되었다. 누구보다도 여행과 자연을 좋아하는 곡성의 성산친구와 같이한 여행이라 더욱 멋진 여행이 되었다 생각된다. 물론 탐사여행같은 그런 딱딱함이 있지만. 그래도 그 고장을 대표하는 유적들을 외면하고서야 어디 여행을 하였다고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하면서 재미없는 글과 그림을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무주와 장수는 정말 산이 많은 곳입니다. 아니... 아주 산촌(山村)이라 해야 맞을 것 같은 그런 곳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생각이 난다. 무주와 진안과 장수는 둘러봐야 온퉁 산밖에 보이는 것이 없어 각각 앞글자를 따 무진장이라는 말이 산이 많음을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 요즈음엔 무엇이던지 많은 것을 표현할 때 "무진장 많으네" 이렇게 쓰고 있는 것 같다. 무진장 많은 산 가운데 골짜기나라 무주, 장수, 이곳을 지나온 마음은 아무래도 하늘이 좁은 나라를 지나온 것 같다. 하늘이 좁은 나라에서는 강원도와 같이 인심이 좋더라는 말도 안되는 속설을 뇌까리며 여기서 여행기를 접는다. _<끝>_

여행일시 : 2005년 05월 10일, - 글 / 그림 - [김영윤의 여행보따리] 도시애들 배너

덧글

  • 민들레 2005/06/13 06:38 #

    무진장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
    산좋고 물좋은 우리 고장을 이렇게 빛내 주시고 ...
    행복 하세요 ...무진장이가 ㅋㅋㅋㅋㅋ
  • 바람꽃그대 2005/06/13 08:56 #

    민들레님 고향이...
    그래서 무주,진안, 장수 무진장이었군요...ㅎㅎ
    즐거운 날 되시길...
  • 도시애들 2005/06/13 11:12 #

    맞아요....그렇게 써놓고보니 무진장...
    정말 좋은 곳입니다.
    산높고 물길고....장수하세요...!!~
  • 땅 꼭때기 2005/06/13 15:48 #

    정말 빗자루질하시면서 댕기시는것 같습니다.
    이렇게 상세히 다니실려면 사전에 조사도 치밀하게 하셔서 다니십니까?
  • 도시애들 2005/06/13 18:40 #

    물론입니다. 지도에서 리허설을 한다음 가는데도
    놓치거나 지나치는곳이 많아요...항상 후회하지요..
    다음에 간다고 해도 잘 안되거든요..
    내일 "잃어버린 무주"를 찾아 떠납니다.
    아쉽게도 반딧불이 축제가 끝이..
  • 碧泉(벽천) 2005/06/13 17:59 #

    큰일입니다.
    제가 님의 블로그에만 들어오면...
    이상한 병이 도지네요.
    직장이고 뭐고 그냥 툭툭털고 떠나고 싶으니 말입니다.
    아~~~ 책임 지세요.
    책임져요.
  • 도시애들 2005/06/13 19:57 #

    내일 새벽에 무주로 떠나는데..
    같이가지죠뭐..ㅎㅎㅎ
    곡성친구랑 무주에서 09시에 쪼인..
    병이 도지시면...같이 해결을 해야..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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