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_전남 장성군 홍길동 테마파크에 가면.... by 도시애들


하루종일 함박눈이 오락가락 한다. 오늘 부안에서 출발해 개암사 돌 때부터 시작된 폭설에 가까운 눈이 그쳤다 내렸다를 반복하더니 급기하에 고창읍성에서도 앞이 안보이게 내리고 또 고창과 장성의 경계인 솔재를 넘을 때도 엄청난 눈이 내렸다. 이제 솔재를 넘어서 금곡 마을에서 눈 때문에 내려보지도 못하고 그만 장성의 황룡면을 향해 가는 길 내내 눈이 오락가락 하더니 이곳 홍길동 테마 파크에 와서도 눈이 한없이 내린다. 오는 길에도 길을 잘못 들어 장성까지 가서 다시 황룡면으로 들어서는 실수까지 하며 찾은 곳이다.

장성까지 오는 도중에 한번도 홍길동에 대한 표지판이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북일면 성덕리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서삼면으로 들어서면 가깝기도 하고 또 강을 건넜다 다시 와야 하는 복잡함도 없이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길을 표지판이 없는 관계로 많은 시간을 소요하고 말았다. 물론 다른 방향에서 오시는 분들은 장성읍을 통과해야 황룡교를 건너 황룡으로 올 수가 있지만 고창 쪽에 서는 표지판만 있으면 서삼면으로 바로 갈 수가 있으니 하루 빨리 장성군에서는 성덕리 삼거리에 표지판을 추가해 주시길 바랍니다.

[홍길동 테마파크앞 주차장에 설치된 안내판...]

이 안내도에 의하면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 아치실마을 일원에 복원되고 있는 홍길동 테마파크는 연면적 230.409제곱미터 이며 총사업비가 514억 6천만원이 들 것이며 2000년도에 생가터가 발견되어 2002년에 복원되었으며, 2004년 전시관을 건립하였고, 현재까지 진입로와 주변 정비에 힘쓰고 있다. 그리고 후로 2005년부터는 행사체험장, 그리고 수변공원과 청소년 수련장을 조성하고 있고, 대가, 민가를 조성할 것이며 청소년 수련원을 건립하고, 주차장, 광장, 청백당 활터등을 완성할 것이다. 라고 쓰여져 있다.

[들어서면 처음 보이는 홍길동 전시관...]

[전시관 안엔 휴일이라 아무도 없고...]

[보조 조명만 약간 켜져있는 전시관...]

[우물에서 물을 떠 먹고 있는 홍길동 캐릭터...]

[검술을 연마하고 있는 홍길동 캐릭터...]

[커다랗고 시원하게 설계해 지어논 홍길동 전시관이 보면 볼수록 정감이...]

[홍길동 생가 복원 안내도...]

이 안내도에 의하면 총면적 1,528평이며 건축물은 4동이고 전통한식으로 복원 되어 잇다. 2001~2002년까지 10억을 드려 복원한 곳이며 앞으로 발굴 조사 후 15세기 사대부 집안의 전통한옥으로 재현할 것이라고 알려준다. 이곳에 복원된 건물 4동의 명칭은 안채, 아래채, 사랑채, 그리고 문간채 이렇게 되어있고, 각 건물에는 모형을 만들어 놓아 보는 이의 이해를 도와주고 있으며 실제와 같은 살림살이도 진열되어 있어 사람이 지금도 살고 있는 그런 착각을 일으키게 해준다.

[홍길동 생가 복원 기념비와 복원된 생가...]

[홍길동 생가 복원기념비...]

기념비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다. "홍길동의 영웅적 삶을 추모하며-그는 고려 명문가의 후손으로 무등의 정기를 받아 바위 염원을 안고 남도의 평화로운 땅 아치실에서 태어났으나 서자를 차별하는 국법에 묶여 사나이 울분을 가슴에 묻고 헐벗은 민중의 횃불이 되어 이 땅의 어둠을 밝히던 자유 인권 운동의 선구자, 이땅을 떠난지 어언 오백년 뱃길로 삼천리 낯설은 이국땅 저 멀리 일본 오키나와 열도에 만인평등 해상왕국을 건설하고 세계화의 선봉에 서서 동 중국해를 무대로 웅혼한 기기를 떨치던 대한의 남아 홍길동 오늘 우리는 그를 영웅이라 부른다. 2004년 5월 3일 장성군수 김흥식" 이라고 배겨져 있다.

[복원된 홍길동 생가 입구인 문간채...]

[문간채 입구를 들어서면 안채가 보이고...]

[홍길동 생가의 안채...]

[홍길동 생가의 바깥채...]

[서얼의 관리 등용금지로 과거를 포기하고 가난한 백성을 돕기 위해 길떠나는 홍길동 ...]

[아버님 제가 의를 찾기 위해 먼길을 떠나겠습니다 하고 읍 조아리는 것 같은...]

[넓은 세상에 나가 백성을 위한 의로운 일을 하기를 당부하는 길동의 아버지...]

[서글픈 길동의 머리 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눈이 많이 오는데도 길동님 곁엔 다 녹아 없어지고...]

[홍길동의 모습이 정밀 리얼해 보이는데...]

[홍길동 생가 안채에 홍길동 어머님이...]

[홍길동 생가 부엌 벽장에는...]

[홍길동 생가 부엌 벽에는...]

[홍길동 생가의 바깥채...]

[홍길동 생가 아래채와 안채를 가르는 담벽...]

[홍길동이 생가 내 아래채...]

[떠나는 길동을 아쉬워하며 방에서 자수를 놓고 있는 길동의 생모 옥영향(玉英香)...]

[홍길동 생가 아래채...]

[홍길동 생가 아래채 입구 쪽문...]

[홍길동 생가의 사랑채...]

[홍길동 생가터 입구...]

[홍길동 생가터에 들어서면 ...]

[어느 분의 묘소인제 이제 좀 시끌벅적하게 생겼네요...]

[홍길동의 생가터를 발굴하였다고...]

홍길동 생가 터가 발굴됨에 따라 더욱 실존인물 임을 밝히는 글들이 많아졌다. 이에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따온글을 실어 본다. 태어난 해는 1440년(세종 22년) 일본의 오키나와 이시가키지마(石원島)야에잔 박물관에 소장된 장전대주(홍길동의 처남)의 족보에는 정통8년 즉 1443년에 태어났다고 기록 되어있음. 태어난 곳은 전라도 장성현 아차곡(아치실)->오늘날의 전남 장성군 아곡 1리 아차실 마을. 홍길동의 가족은 홍길동의 어머니-옥영향(玉英香) - 관기(官妓)로 홍상직이 총애하는 여인이었다.배가 다른 홍길동의 두 형(귀동, 일동)의 어머니는 남평 문씨이다. 소설에서는 춘섬(春蟾)인데, 이는 홍길동전의 작가인 허균이 자신의 애첩의 이름이 추섬(秋蟾)인데서 명명한 것이다. 춘섬은 봄 두꺼비라는 뜻으로 집안에 부귀와 복을 가져다 주는 염원이 담겨있다.

홍길동의 부인-고을노 -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으며, 조선에서 미질이 좋은 신품종의 볍씨(쌀)을 오키나와에 가져감. 오키나와 일대에는 이미 안남미(安南米)라는 남방계의 쌀이 있었으나 질이 좋지 않았다. 현재 오키나와 야에야마(八重山)지역에서는 고을노를 풍요의 여인으로 추앙하고 있다. 이는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한다. 즉 홍길동 집단이 해외로 떠나면서 오곡의 종자를 항아리에 담아 함께 가져갔음을 추정케 한다. 홍길동의 활동 청년기(1460년 세조 6년~1470년 성종 1년) 서얼의 관리등용을 금지 하는 경국대전의 반포로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집을 떠나 나주목 관할 장성현, 갈재(葦嶺)를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광주 무등산, 영암 월출산에 본거지를 정하고 주로 탐관오리와 토호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에게 나눠주는 의적 활빈 활동을 하였다. 그후 지리산 근처의 경상도 하동군 화계현 보리암자에 지휘부를 두고 관군과 대항하였으며, 멀리 경상도 진주에까지 세력을 펼쳤다. 그후 김천 황악산에 들어가 학조대사에게서 병법과 무술을 배웠다.

장년기(1471년 성종 2년~1500년 연산군 6년) 관군에 좇겨 1469년 11월 중순에 전라도 영광 다경포(현재의 법성포)근처의 영평곶에서 배를 타고 나주 압해도(신안군 압해도)쪽으로 활동 근거지를 옮기게 된다. 이로써 활동범위가 육지에서 바다로 바뀌게 되는데, 이는 훗날 뱃길로 3천리나 떨어진 일본 오키나와에 율도국이라는 해상왕국을 건설하는 계기가 된다. 특히, 이 시기에는 집단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직접 농사도 짓고 염전을 경작하고 어업활동을 했으며 상업활동(시장에서의 장사)까지 영위하면서 부패한 정부와 관료를 상대로 반봉건 투쟁을 벌였다. *1470년(성종 원년) 관군의 집요한 토벌작전을 피하기 위하여 가짜 홍길동을 내세워 체포당하게 하는 계약을 꾸민 홍길동 집단은 남서해안의 여러 섬을 중심으로 생업에 종사하며 평화스럽게 살아간다.

*1485년(성종 20년) 11월, 명예욕이 강했던 전라도 도사 한건이 이들을 폭도로 몰아 강경진압을 결행하고 관아에 끌고가 매질하여 죽이는 사태가 발생하자 홍길동 집단은 생업을 뒤로한 채 재무장 투쟁에 나서게 된다. *1487년(성종 22년) 홍길동 집단은 물론, 생계유지를 위해 어민들이 주로 이용하던 거도선(바닥이 평평하고 근거리 이동에 용이함)이용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린다. *1489년(성종 24원년) 해상 통행증 발급 - 홍길동 집단을 색출하기 위해 바다를 왕래하는 사람을 상대로 통행증을 발급하여 활동을 원칙적으로 봉쇄함. *1490년(성종 25년) 관군의 해상봉쇄작전으로 고립에 빠진 홍길동 집단은 2개조로 나누어 전라도 남해안 광양현(현재의 순천 광양만)으로 상륙을 단행한다. 그러나 또다시 관군에 쫓겨 지리산근처 임실 평당원에서 종적을 감춤.

*1495년(연산군 1년) 충청도 조령, 문경세재를 주요 활동지로 홍주와 공주를 생활근거지로 삼아 충청도 전역으로 세력을 넓힘. 특히 공주 무성산 정상(614m)에 요새를 쌓고 관군에 대항하며 집단생활을 영위하였으며, 이 시기에는 엄귀손 등 조정의 고위직 관리는 물론 지방의 수령, 아전, 유향소의 품관들까지 이들의 활동을 동조함. *1500년(연산군 6년) 10월 22일 무오사화(1498년)로 인해 상당수의 사림파가 목숨을 잃거나 귀양을 가게되고 수년에 걸친 전국적인 가뭄으로 조정에 대한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자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석방하여 가족과 함께 함경도지방에 가서 살도록 하는 대 사면령을 내림. 이로 인해 홍길동 집단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체포되는 형식으로 자수하였는데, 강상죄(고위관직을 사칭하여 관리를 능욕한 죄)로 충청도에서 서울로 압송, 의금부에 갇힘. *1500년(연산군 6년) 11월 남해 삼천리 유배형을 받았다고 쓰여있다.

[생가터에서 나오는 길에 또 흰눈이 쏟아져...]

[길동 계곡을 내려서면 길동샘 이라는 약수터가...]

[행사장 만들기 한창인 곳에 석교와 통나무 다리가...]

[멋진 아치형의 통나무로 만든 아치교...]

[통나무 모형의 아치교가 멋지게...]

[통나무다리 밑엔 고풍스러운 석교가...]

[주차장 앞 안내 표지판 뒤에는 이렇게 마스코트가 그려있어...]

[멀리 행사장이 조성되고 있는 넓은 터...]

[전부 다 완공되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 같은 기분이...]

올해에도 시행될 축제를 알아보면 "홍길동의 민권사상과 정신을 현대적 관점에서 승화 발전시키기 위한 홍길동 축제가 5월 5일부터 7일까지 홍길동테마파크 및 공설운동장에서 '만나보세 홍길동! 가보세 장성으로...'라는 주제로 열린다. 소설 속의 실존인물 홍길동을 소재로 한 홍길동 축제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체험행사가 마련돼 있다. 활빈당 활쏘기, 홍길동 바람개비 만들기, 생가민속놀이, 율도국 호패놀이, 율도국 뱃길체험, 생태공원 자전거 체험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또 전통무예공연 '경당''택견', 장성 마당극 '신 홍길동뎐', 활빈당 산채퍼포먼스, 전통 줄타기, 안치환과 자유 테마콘서트 등의 공연행사도 준비돼 있다.(☏ 061-390-7224)"고 한국 관광공사에서 알려준다. 테마파크라는 커다란 주제 안에 지금은 작고 아담한 전시관과 복원된 가옥과 생가터 이것이 전부이지만 몇 배나 더 큰 땅들이 개발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커다란 테마파크가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벌써 날이 어두워 지기 시작한다. 들어오면서 본 필암 서원을 둘러보려 빠른 걸음으로 내려서 차량에 시동을 걸어본다. -<끝>-



덧글

  • 아짐 2007/03/02 01:37 #

    아~
    이런 곳이 있었군요.
    우째 그리도 둘러 보시는 곳마다 자세히 아시는지^^
    늘...책으로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답니다.
  • 도시애들 2007/03/02 11:30 #

    비가 많이 오는 날 하필이면
    차가 고장나 지금 수리하고..ㅋㅋ
    공치는 날이라더니 정말...돈만
    날씨는 봄인데...제 블로그는
    아직도 한겨울...ㅎㅎㅎ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
    요즘 유행이던데...
  • 솔이 2007/03/02 19:49 #

    컴이 병원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안녕하셨는지요.
    시간나는대로 와서 올리신글 보고 공부하러 올께요 포멧이 되어서 프로그램 깔러 갑니다.ㅎㅎ
  • 도시애들 2007/03/04 01:32 #

    거참 오래도 걸렸구먼..ㅎㅎ
    아마 티븨가 고장났으면
    그렇게 오래 걸리진..ㅋㅋ
    반갑구먼..ㅎㅎㅎ
  • 쉼표하나 2007/03/07 09:37 #

    3년 전쯤 갔었는데....
    많이 변해 있네요.
    장성말고 강릉도 홍길동으로 유명한 지역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 지역이 서로 홍길동을 가지고 설왕설래 했던걸로 아는데, 어떻게 결론이 내려졌는지...^^
    꽃샘 추위가 매섭네요... 감기조심하시길 바랍니다.
  • 도시애들 2007/03/07 09:40 #

    여러가지 문헌에 의하고 또
    일본에 있는 자료와 여러것들을
    종합해 장성이 유력히 된것 같습니다.
    우선 생가터가 나왔으니 말이죠..
    그런데 굉장히 넓게 확장을 하고 있더군요..
    하긴 논개같이 장수의 논개사당은 잘 몰라도
    진주남강 하면 논개가 더 유명한 이런사례도..ㅎㅎ
    보는이들이 아끼고 사랑해야지요..뭐..
  • 홍길동 2009/09/09 10:48 # 삭제

    빌려갑니다..
  • mlovw21 2010/05/05 09:45 # 삭제

    근데 제가 조사 숙제가 있거든요.
    홍길동 태어나신 해와, 돌아가신 해요.
    근데 태어나신 해는 있는데, 돌아가신 해는 없네요?
    어떻하죠?
    ㅠㅠ
    안하면 손바닥 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대인데.....ㅠㅠ'
    앙 무셔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