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_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장경사 by 도시애들


서울 근교에 위치한 산성중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함께 서울을 지켜오던 방어의 중요한 기지로 장경사 역시 남한산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장경사는 대한 불교조계종 제 1 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로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21-1 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로 조선 인조 16년(1638, 무인)에 벽암대사 각성(覺性)에 의해 처음 만들어 졌다. 당시 남한산성에서는 전국의 승려가 동원되어 산성을 축조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머물 곳으로 7개의 절을 창건하게 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장경사(長慶寺)이다.

이때 창건한 다른 모든 절은 일제에 의해 폐사가 되었고 오직 장경사만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 있다. 남한산성은 사적 외에 도립공원으로도 지정되어 수많은 관광객들의 휴식처로서 기능하고 있다. 서울과 경기지역에서 거의 유일하게 대단위의 소나무 숲이 보존되어 산림욕에 최적인 장소로서 도시생활에 지친 대도시민들의 휴식장소로서 그리고 등산장소로서 매우 훌륭한 공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장경사 안에도 매우 넓은 공지가 마련되어 있어 수많은 관광객들의 휴양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산성넘어 장경사 일주문을 들어서게 되고...]

이곳에서 바라다보는 경관 역시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을 주므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장소가 되었다. 현재 장경사는 경기도 문화재 자료 15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창건당시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유물은 많지 않으며, 건물들은 모두 후대에 중수된 것들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무심당, 범종각, 삼성각, 심향각과 요사 1채가 있으며, 그밖에 팔각구층석탑 1기가 있다. 모두 근래에 들어와 지어졌으며 장경사라 쓴 편액이 걸려 있는 요사채가 가장 오래된 건물로서 옛 모습을 전하고 있을 뿐이다.

[장경사 심향당(心香堂)...]

장경사 중심 마당 왼편에 위치한 심향당은 스님들이 거주하는 건물이다. 정면 5간, 측면 2간으로 구성되어 있는 건물로 정연한 느낌을 준다. 초석은 원형초석을 사용했고, 그 위에 세워진 기둥은 배흘림기둥을 사용했다. 공포는 이익공을 사용했고, 기둥과 기둥사이에는 2개씩의 화반을 사용해 도리를 받치고 있다. 중앙의 3간에는 퇴를 두어 마루로 활용하고 있고, 이곳에는 정자살, 교살의 복합적인 살대를 응용한 창호를 두어 입면을 구성하고 있다. 가구는 7량의 구조로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배치에 있어서는 눈에 두드러지지 않고 적당한 자리에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건립된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장경사 무심당(無心堂)...]

“청량산진남루중건상량문”에 의하면 폐허가 된 개원사의 루를 옮겨 1909년에 진남루를 중건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사찰에서는 루가 법당의 앞마당 끝을 가로막고 서는 것이 일반적이다.“청량산진남루중건상량문”에 의하면 루 전면에 화약고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어, 진남루 전면에 넓은 대지가 있어야 함을 알 수 있다. 현재 무심당이 위치하고 있는 곳 전면에는 넓은 마당이 있어 원래 무심당이 위치하고 있는 자리에 진남루가 있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현재의 무심당은 정면 3간, 측면 1간으로 루 건축과는 거리가 멀다.

[장경사 9 층석탑과 대웅전...]

따라서 어느 때 진남루가 사라지게 되었고, 이 자리에 무심당을 다시 건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무심당은 맞배지붕에 민도리집 형식을 띄고 있으며, 장경사거사회의 모임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 크지 않은 작은 건물이며, 외부에서 법당으로 향하는 시선을 차단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무심당 근처에 위치한 은행나무는 여러 참배객, 관광객의 쉼터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장경사 대웅전...]

장경사의 중심 불전인 대웅전은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신 전각으로 한국의 수많은 사찰에서 중심 불전으로 건립한 전각이다. 그래서 사찰하면 대웅전이 생각나게 되고, 대웅전이 사찰 중심 불전의 대표격이 되었다. 대웅전은 매우 높은 축대 위에 도리통 3간, 양통 3간으로 구성했다. 양통이 3간이라고 해도 도리통보다 간을 좁게 만들었기 때문에 정면이 측면보다 긴 장방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초석은 항아리형의 매우 특이한 모양으로 만들었다. 양각의 연꽃무늬를 조각해 매우 화려한 모습을 한 초석의 모습은 다른 사찰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형태이다.

[장경사 대웅전...]

기둥은 모두 원통형의 기둥을 사용했다. 기둥에는 주련을 걸었다. 주련은 모두 한글을 사용했다. 보통 사찰에서는 전통방식의 한자를 사용한 주련을 사용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어느 사이 일반 대중이 한자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주련이 걸려있으나 그 주련을 읽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주련은 결코 장식물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일반에게 알리고 부처님의 공덕을 대중이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곳 장경사에서는 주련의 형태에 더 이상 집착을 보이지 않는 반면에, 주련으로써 대중에 다가가고자 한 것이다.

[...]

[장경사 범종각...]

대웅전 왼편의 높은 축대 위에 사방 1간의 범종각이 있다. 아래는 철근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건물이 놓여있고, 범종각은 그 위에 목조로 건축되어 있다. 최근에 다시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1층 주변으로 돌을 쌓아 대웅전의 축대가 연결된 듯 한 느낌을 갖게 했다. 범종각 왼편으로는 약수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물을 받아가고 있다. 범종각은 모임지붕을 하고 있는데, 초석은 잘 다듬은 원형초석을 사용했다. 공포는 다포식을 사용하고 있으나 대웅전과 마찬가지로 출목이 없다.

[장경사 범종각내 범종...]

범종각에는 범종만 걸려 있을 뿐 운판이나 목어 등 다른 사물은 보이지 않는다. 범종은 1985년에 새로 조성한 것이며, 범종각 역시 이 시기에 건립된 것이다. 기둥에는 한글로 쓴 다음과 같은 글귀의 주련을 걸어 놓았다. 종소리를 들으면 번뇌가 끊어지고, 지혜는 자라나서 깨달음 생겨나네, 지옥을 떠나고 삼계를 벗어나서, 원컨대 성불하여 일체중생건지리다. 멀리하늘 저끝까지 울려퍼지고, 깊이 땅속 더 깊은 곳까지 스며드네, ....라는 주련의 문구가 밝은 범종각 단청의 색과 금장의 빛이 더욱더 눈에 뜨인다.

[장경사 범종각...]

[장경사 9 층석탑...]

장경사 마당 오른편에는 거대한 9층의 불사리탑이 조성되어 있다.“불사리탑건립기념비”에 의하면 1995년에 새롭게 조성한것이라고 한다. 화강암을 이용해 건립했으며, 팔각평면을 기본형으로 하고 있는 팔각구층탑이다. 하층기단에는 각면에 팔부신중을 양각으로 묘사해 놓았는데, 그 조각이 투박하고 익살스럽다. 하층기단 위에는 다시 2단의 기단을 올려놓았고, 그 상부에 탑신을 올려놓았다. 9개 층이 상부로 갈수록 체감되면서 그 높이 역시 줄여나갔다. 최종적으로 상륜부를 올려 전체 탑의 모양을 완성했는데, 상륜부 역시 팔각형을 기본으로 이용해 구성했다

[석벽에 넣어 새겨놓은 연꽃의 아름다움을...]

[장경사 삼성각...]

대웅전 오른편에는 넓은 대지가 있고, 여기에 뒤편 언덕으로 오를 수 있는 계단이 조성하였다. 이 계단을 따라 언덕으로 오르면 삼성각에 도달하게 된다. 삼성각은 칠성, 독성, 산신을 모신 전각이다. 원래 이곳에는 1892년에 조성된 칠성각이 위치하고 있었으나 1990년에 새로 삼성각을 건립하였다 한다. 평면은 도리통 3간, 양통 2간으로 구성했다. 초석은 다듬은 원형 초석을 사용했다. 건축형식은 기둥 위에 익공을 아래위로 2개 사용한 이익공식으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공포와 공포 사이에는 화반을 사용해 도리의 처짐을 받치고 있다.

[장경사 삼성각 밑에 소원을 비는...]

그 상부에 봉황머리를 조각해 주심도리를 받치고 있다. 건물 내부 북벽에는 불단을 만들고 중앙에 칠성탱화, 왼편에 독성탱화, 오른편에 산신탱화를 모셨다. 장경사의 경우, 독성과 산신은 탱화만 모시지 않고 조상(彫像)을 함께 모신 것이 특징이다. “기내사원지(畿內寺院誌)”에는 장경사에 칠성각과 산신각이 따로 조성되어 있었고, 칠성탱화는 1921년에 조성된 것이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현재 삼성각에 모셔진 칠성탱화가 당시의 그 탱화인지 여부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다. 독성탱화의 경우는 화기에 의해 1990년에 새로 조성한 것을 알 수 있다.

[장경사 경내...]

[장경사 대방(大房)...]

장경사 마당 오른편에는 원래 대방채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이 있다. 현판 은“장경사”라고 하고 있는데, 장경사에 현재 남아있는 건축물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건물로 추정된다. 원래 대방채는 불전의 역할까지 겸하는 건물이었다. 그러나 근래에 새로 불전들을 건립하면서 그 역할이 변해 현재는 대부분 이 건물을 요사로 사용한다. 현재 장경사에서도 이 건물을 대중들이 모이고 공양을 하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이 건물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기둥 위의 초익공식 짜임이다.

[장경사 대방 처마에 걸린 장경사 현판...]

기둥과 기둥사이에 따로 창방을 사용하지 않고 이 자리에 첨차를 꽂아 넣은 모습이 독특하다. 익공의 쇠서 형태도 매우 독창적이다. 이 건물에서는 쇠서의 하부에 연봉을 같이 조각했는데 다른 곳에서 쉽게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정면 6간, 측면 3간으로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오른쪽 1간은 후에 달아낸 듯 하며, 이곳에 경사지붕을 이용해 본체에 붙여내었다. 모든 악은 짓지 말고, 뭇 선을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마음을 깨끗이 하라,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닐런지 하는 생각에 잠긴다.

[장경사 대방의 큰방같은 방 위는 유리로 탁트이게 만들고 문은 고풍스러운...]

[장경사 대방 부엌쪽으 문 같은...]

장경사의 일주문은 차 하나 지날 정도의 작은 문인데 느낌은 굉장히 커다란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아마도 양쪽을 받히고 있는 기둥이 굵어 보여서 그런 모양인데 그 기둥이 꼭 덕소의 묘적사 기둥들 모양 다듬어지지 않은 그런 야생미가 있는 기둥이어서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을 하며 다시 일주문을 나선다. 이곳은 차량이 일주문을 통과할 수밖에 없는 그런 문으로 만들어져 있다. 물론 차를 타고 일주문을 들어선다는 내가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내려서 걸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이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삶의 의미와 생각은 아닐런지? -<끝>-


 - 글 / 그림 - [김영윤의 여행보따리] 도시애들 배너